「허생전」은 조선 후기에 박지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옥갑야화」에 수록되어 있다. 허생이라는 선비를 내세워 ‘북벌’이라는 허울좋은 구호를 내걸고 백성의 관심을 집중시켜 내부의 병리에 눈감아버리게 하는 당대 위정자의 무능과 허위를 꼬집어 풍자한 문제작이다. 박지원은 작품 속에서 북학론을 내세우며 실학자로서의 경륜도 드러내었다. 이전의 전기소설과는 달리 당대의 사회 병리를 통찰하고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할 열정을 가진 이상주의자 허생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한국소설사의 새 장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조선 후기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작자의 문집인 『연암집(燕巖集)』 별집(朴榮喆本, 1932)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옥갑야화(玉匣夜話)」에 수록되어 있다.
이가원(李家源) 소장의 일재본(一齋本) 필사본에는 「진덕재야화(進德齋夜話)」에 들어 있다. 두 이본의 내용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후지(後識)는 전혀 다르다.
「옥갑야화」는 작자 박지원이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옥갑에 들러 여러 비장(裨將)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적은 것이다. 「허생전」은 윤영(尹映)에게서 들은 변승업(卞承業) 할아버지의 치부 유래를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 본디 제목 없이 편의상 「허생」 또는 「허생전」이라 부른다. 「옥갑야화」 전체를 한 편의 작품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허생전」을 지은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박지원이 중국에 다녀온 것이 1780년(정조 4)이고, 『열하일기』를 다시 기술한 것이 1793년이므로 그 사이에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덕재야화」의 후지로 미루어 1780년 이전의 4, 5년 사이에 쓰여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허생은 남산 아래 묵적골의 오막살이집에 살고 있었다. 그는 독서를 좋아하였으나 몹시 가난하였다. 아내가 삯바느질을 하여 살림을 꾸려나갔다. 굶주리다 못한 아내가 푸념을 하며 과거도 보지 않으면서 책은 무엇때문에 읽으며, 장사 밑천이 없으면 도둑질이라도 못하느냐고 대든다. 허생은 책을 덮고 탄식하며 문을 나선다.
허생은 한양에서 제일 부자라는 변씨를 찾아가 돈 만 냥을 꾸어 가지고 안성에 내려가 과일장사를 하여 폭리를 얻는다. 그리고 제주도에 들어가 말총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번다. 그 뒤에 어느 사공의 안내를 받아 무인도 하나를 얻었다.
허생은 변산에 있는 도둑들을 설득하여 각기 소 한 필, 여자 한 사람씩을 데려오게 하고 그들과 무인도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다. 3년 동안 거두어들인 농산물을 흉년이 든 나가사키(長崎 장기)에 팔아 백만금을 얻게 된다.
그는 외부로 통행할 배를 불태우고 50만금은 바다에 던져버린 뒤에 글 아는 사람을 가려 함께 본토로 돌아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남은 돈 십만금을 변씨에게 갚는다.
변씨로부터 허생의 이야기를 들은 이완(李浣)대장이 변씨를 데리고 허생을 찾는다. 이완이 나라에서 인재를 구하는 뜻을 이야기하자 허생은 “내가 와룡선생을 천거할 테니 임금께 아뢰어 삼고초려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종실의 딸들을 명나라 후손에게 시집보내고 훈척(勳戚) 귀가의 세력을 빼앗겠느냐?”, “우수한 자제들을 가려 머리를 깎고 호복을 입혀, 선비들은 유학하게 하고 소인들은 강남에 장사하게 하여 그들의 허실을 정탐하고 그곳의 호걸들과 결탁하여 천하를 뒤엎고 국치를 설욕할 계책을 꾸미겠느냐?”고 묻는다.
이완은 이 세 가지 물음에 모두 어렵다고 한다. 허생은 “나라의 신신(信臣)이라는 게 고작 이 꼴이냐!”고 분을 참지 못하여 칼을 찾아 찌르려 하니 이완은 달아난다. 이튿날에 이완이 다시 그를 찾아갔으나 이미 자취를 감추고 집은 비어 있었다.
「허생전」은 박지원의 실학적 경륜을 볼 수 있다. ‘남한설치(南漢雪恥)’라는 국민감정을 부채질하여 ‘북벌’이란 허울좋은 구호를 내걸고, 국민 모두의 관심을 이에 집중시켜, 자체 안의 병리에 눈감아 버리게 한 당대 위정자의 무능과 허위를 꼬집어 풍자한 문제작이다.
허생이 이완에게 제시한 인재등용, 훈척들의 추방 및 명나라 후예와의 결탁, 유학(留學)과 무역 등의 시사삼난(時事三難)의 단편적인 내용을 묶어 작품의 절정을 삼고 있다. 그럼으로써 무능한 북벌론자를 통매하고, 북학론(北學論)을 주장한 수법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허생전」은 박지원 스스로가 윤영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옮긴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민담(民譚)을 소설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희준(李羲準)의 『계서야담(溪西野譚)』에도 이 작품과 흡사한 내용의 허생 이야기가 실려 있다. 또 실존하였던 인물 허호(許鎬)의 일이 허생과 비슷하다.
그러나 「허생전」의 후지 두 편의 내용이 서로 다르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윤영이라는 인물의 정체가 애매하다. 심지어는 허생의 성인 허(許)조차 부인되고 있다. 박지원이 자신의 작품임을 숨겨서 당대의 사람들의 비난을 모면하려 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허생전」은 지난날의 전기소설(傳奇小說)과는 달리 이 소설은 사회의 병리를 통찰하고 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할 열정을 가졌던 이상주의자 허생을 창조하였다는 점에서 한국소설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