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서야담』은 조선 후기 편자 미상의 야담집이다. 1828년에 계서 이희평(李羲平)이 편찬한 『계서잡록(溪西雜錄)』과, 1833~1869년에 『계서잡록』을 발췌 · 변용 · 보충한 『기문총화(記聞叢話)』를 뒤섞은 것이다. 세 야담집은 모두 하나의 계통으로 묶을 수 있으며, 상호 간의 긴밀한 관련성을 고려해야 한다.
『계서야담』의 편자는 미상이다. 여러 매체에서 계서(溪西) 이희평(李羲平) 혹은 그의 형인 이희준(李羲準)을 『계서야담』의 편자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희평은 『계서잡록(溪西雜錄)』을 편찬했다. 이후 1833~1869년에 『계서잡록』을 발췌하고 변용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첨가한 『기문총화(記聞叢話)』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1869년 이후에 『계서잡록』과 『기문총화』를 뒤섞은 야담집이 『계서야담』이다. 따라서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계서야담』의 편자를 알 수 없고, 아무리 빨라도 편찬된 시기를 19세기 중반 이전까지 소급(遡及)시킬 수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계서야담』은 5종이다. 천리대 소장 4권 4책 본, 규장각 소장 6권 6책 본, 연세대 5권 5책 본, 간송미술관본 1책, 일본 경도대 하합문고 소장 3권 3책 본 등이 그러하다. 이 중 선본(善本)은 천리대본이다.
『계서야담』의 선본은 천리대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에 소장된 4권 4책 본이다. 1권에는 71편, 2권에는 27편, 3권에는 45편, 4권에는 17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의 총수는 313편이다. 1권은 다른 권보다 1.5배 정도의 분량이다.
규장각본은 6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김기동이 『한국문헌설화전집』에 영인(影印)하여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지만, 천리대본보다 후행본이다. 1, 2, 3, 4, 6권에는 표제를 ‘계서야담(溪西野譚)’으로 적었지만, 5권에는 ‘계서만담(溪西漫譚)’으로 적었다. 1권에는 33편, 2권에는 38편, 3권에는 19편, 4권에는 32편, 5권에는 53편, 6권에는 127편 등 총 312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규장각본에는 천리대본 3권 35화가 빠져 있다. 전사(傳寫)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빠뜨린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본은 오행(五行)에 따라 권차를 표시하였다. 이 중 금(金)권이 낙질(落帙)이다. 목(木)권과 수(水)권은 내제(內題)에 각각 ‘계서야담 목(溪西野譚 木)’과 ‘계서야담 수(溪西野譚 水)’라고 표기했지만, 토(土)권과 화(火)권은 ‘계서야담(溪西野譚)’으로만 적었다. 목권에는 37편, 토권에는 40편, 화권에는 21편, 수권에는 155편이 실려 있다. 수록된 이야기는 총 252편이다. 낙질인 금권은 천리대본 3권에 해당한다. 이를 고려하면 연세대본에는 최대 297편의 이야기가 실렸을 가눙성이 높다.
일본 경도대본은 3권 3책이다. 상권에는 45편, 중권에는 155편, 하권에는 37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수록된 이야기는 총 237편이다. 천리대본을 발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간송미술관본은 보성고등학교에 소장되어 있었던 것인데, 현재는 실물 확인이 불가능하다. 모든 『계서야담』에서는 각각의 이야기가 바뀔 때마다 줄을 바꾸고 ‘○’ 표로 다른 이야기와 구분했다.
『계서야담』에 수록된 작품 313편은 『계서잡록』과 『기문총화』에 실린 것을 다시 기록하였다. 두 야담집에는 실리지 않고 『계서야담』에만 실린 작품은 「홍순언(洪純彦) 이야기」가 유일하다. 물론 『기문총화』 4권에도 「홍순언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계서야담』과는 계열이 다른 이야기다.
또한 『계서야담』은 『기문총화』를 수용하되, 『기문총화』 4권에서 발췌한 이야기를 한 편도 수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계서야담』이 『기문총화』에 실린 「홍순언 이야기」를 수용했다고 볼 여지가 없다. 『계서야담』에 수록된 「홍순언 이야기」는 『통문관지』 계통이다. 다만 『계서야담』의 앞부분은 『통문관지』를 그대로 따르면서 후반부는 상당히 축약하였다. 『통문관지』에 보이는 ‘임진왜란 때에 석숭(石崇)의 도움’ 대목 이하를 『계서야담』에서는 “임진년에 왜적이 쳐들어왔을 때 중국 병사가 온 것은 모두 석 시랑이 혼자서 극력으로 주선했기 때문이다.”로 간략히 기술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계서야담』은 『기문총화』를 발췌하면서도, 그중에서 『어우야담』을 출전(出典)으로 한 이야기를 모두 배제했다는 점도 특기(特記)할 만하다.
『계서잡록』, 『기문총화』, 『계서야담』은 우리나라 야담집의 향유 양상을 살피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노명흠의 『동패락송』에서 영향을 받은 이희평의 『계서잡록』은 『기문총화』와 『계서야담』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야담의 가장 큰 흐름을 만들어 냈다. 실제로 『청구야담(靑邱野談)』이나 『동야휘집(東野彙輯)』이 이들 계통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야담집이 지닌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야담집의 계통 중 『계서야담』은 다른 야담집에 비해 그 영향력이 크지 않았지만, 야담집의 흐름과 변용이 이루어지는 양상을 확인하는 데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