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위

  • 역사
  • 제도
  • 조선 전기
조선 1492년(성종 23)에 서얼(庶孼)의 진출로를 열어준다는 취지 아래 신설된 금군 성격의 군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민현구 (고려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1492년(성종 23)에 서얼(庶孼)의 진출로를 열어준다는 취지 아래 신설된 금군 성격의 군대.

내용

중앙의 친위부대(親衛部隊) 가운데 하나로 당시 금군(禁軍)인 겸사복(兼司僕)과 내금위(內禁衛)가 다수 변방으로 파견되어, 서울에 있는 금군의 부족이 문제가 되어 이를 강화하기 위한 조처로 만들어졌다.

무재(武才)가 특이한 서얼 가운데 시취(試取)한 50인을 정원으로 하여 장번(長番) 근무를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모두 체아직(遞兒職)을 받았다. 다른 금군과는 달리 체아록 이외에 급보(給保)의 혜택이 주어져서 1보(保)가 지급되었다.

우림위는 180일에 가계(加階)되지만, 서얼이기 때문에 한품서용(限品敍用)의 제약을 받았다. 금군으로서 겸사복이나 내금위보다는 낮지만 갑사(甲士)보다는 상위에 위치하였다.

그 지휘관은 종2품의 우림위장(羽林衛將) 3인이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폐지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설치되었으며, 1666년(현종 7)에 금군청(禁軍廳)이 설치되면서 겸사복·내금위와 더불어 그에 속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대전속록(大典續錄)』

  • -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

  • -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 - 「조선시대(朝鮮時代)우림위(羽林衛)의 성립(成立)과 그 편제(編制)」(최효식, 『동국사학』15·16합집, 1981)

  • - 「중앙군(中央軍) 및 지방군제(地方軍制)의 변화(變化)」(이태진, 『한국군제사-근세전기편-』, 한국군사연구실, 196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