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고려병제사연구』는 1968년 역사학자 이기백의 고려시대의 군사제도에 관한 학술서이다. 「고려경군고」를 비롯한 13편의 논문을 일관된 체계로 정리하여 간행하였다. 고려의 군사제도를 경군·주현군·주진군의 3범주로 구분하였다. 고려의 군인은 농민과 구분되는 군반씨족을 기반으로 군역을 세습하는 전문적 군인이라는 군반제를 주장하였다. 특히 종래 군사제도를 인적 구성 문제로 이해한 부병제설을 비판하였다. 군사제도와 관련해 토지제도·신분체제·지방제도 등 폭넓은 문제들을 추적, 고려사회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넓히는 데 획기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된다.
정의
1968년 역사학자 이기백의 고려시대의 군사제도에 관한 학술서.
개설
서지적 사항
내용
다음으로 본격적인 고찰에 들어가, 고려의 군사제도를 경군(京軍) · 주현군(州縣軍) · 주진군(州鎭軍)의 3범주로 구분하고 먼저 경군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고려 초기의 중앙군이었던 경군이 이군육위의 조직으로 정비되는 과정, 군인으로서의 사회적 지위 및 그들이 지는 군역(軍役)에 대해 살폈다.
경군은 태조 왕건(王建)의 직속군(直屬軍)에 그 뿌리를 둔 조직으로서, 군반씨족(軍班氏族)이란 전문적인 군인층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전시과(田柴科)에 포함되는 군인전(軍人田)을 받고, 군호연립(軍戶連立)에 의해 신분과 토지를 세습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고려 초기의 군사제도는 결코 부병제(府兵制)가 아니었다고 강조하였다.
주현군에 대해서는, 그 성립 과정을 지방 호족이 지배하던 병력을 중앙정부가 흡수하는 면과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배치된 군대가 지방군화하는 면의 두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그리고 주현군의 실태를 따지고 들어가, 경군과는 별도의 체계 속에 존재한 지방군의 하나로, 병농일치(兵農一致)의 원칙에 따라 남방(南方) 5도의 장정 대부분을 망라한 민병(民兵) 조직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에 비해 양계(兩界)에 배치된 지방의 국방군으로서의 주진군은 태조 때 요새지에 설치된 진(鎭)과 진수군(鎭戍軍)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며, 그들의 구성 요소는 여러 가지지만, 크게 보아 둔전군적 성격(屯田軍的性格)을 가졌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고려군사제도는 다원적이고, 농민과 구분되는 군반씨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부병제가 아닌 군반제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고려사회에서 군인(경군)은 군역을 세습하는 전문적 군인으로서, 지배층인 귀족 관료와 피지배층인 농민의 중간에 위치하는 신분적 지위를 가진다고 보았다.
의의와 평가
그러므로 군사제도와 관련해 토지제도 · 신분체제 · 지방제도 등 폭넓은 문제들을 추적, 고려사회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넓히는 데 획기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한 종래에 널리 통용되어 온 고려부병제설을 철저히 비판하고, 군반제라는 독특한 군사제도를 제시한 점도 두드러진다. 부병제설을 부정한 데 대해 강진철(姜晋哲)이 비판적 견해를 나타내어 부병제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병제사연구』(이기백, 일조각, 2002)
- 「이기백저 고려병제사연구(李基白著 高麗兵制史硏究) 서평(書評)」(하현강,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 3, 1969)
- 「李基白著高麗兵制史硏究 書評」(有井智德, 『朝鮮學報』 51, 1969)
- Review on Studies on the History of the Koryo Military System by Lee Ki-Baik(Kang Chin-Chul,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 29,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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