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군 ()

목차
관련 정보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 전기 북방 국경지대인 양계(兩界: 北界 · 東界)의 주 · 진(州鎭)에 설치된 지방군.
내용 요약

주진군은 고려 전기 북방 국경지대인 북계와 동계의 주·진(州鎭)에 설치된 지방군이다. 고려의 국경지역는 일반 행정구역과는 달리 방어주(防禦州)·진(鎭)을 설치하고 방어사(防禦使)와 진장(鎭長)을 임명하였다. 주현군과 비교해 병종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고, 병력수도 훨씬 많다. 주·진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은 주진군 조직에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교대로 동원되다가 유사시에는 모든 병력이 동원되었다. 남도로부터 번상한 방수군은 중앙에서 파견된 방수장군의 지휘하에 국경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주·진이 함락되면서 붕괴되었다.

목차
정의
고려 전기 북방 국경지대인 양계(兩界: 北界 · 東界)의 주 · 진(州鎭)에 설치된 지방군.
개설

고려시대 국경지역인 양계는 남도의 일반 행정구역과는 달리 특수한 행정조직과 군사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행정조직상 남도지역은 일반 주(州) · 군(郡) · 현(縣)이 설치되었는데 비하여 양계지역은 방어주(防禦州) · 진(鎭)이 설치되어 군사적인 주진체제로 편성되었다. 남도의 주현군(州縣軍)이 단순히 보승(保勝) · 정용(精勇) · 일품군(一品軍)의 단순한 병종으로 구분된 것과는 달리 양계의 주진군(州鎭軍)은 병종이 훨씬 다양하게 구분되었을 뿐만 아니라 병력수도 많았다. 이러한 특징은 양계지역의 군사적인 중요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용

고려는 건국초부터 북방 국경지대의 신개척지에 주나 진을 설치하였다. 주 · 진은 군사적 성격이 강한 행정구역으로서 주에는 방어사(防禦使), 진에는 진장(鎭長)이 임명되었다. 한편 주진 이외에 현령관이 임명된 현도 다수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청천강과 원산만 이남의 후방 지역에 위치하였다. 주진군 역시 남도 주현군과 마찬가지로 성종대에 조직의 정비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주 · 진은 모두 성곽에 의해 둘러싸인 무장도시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북방의 신개척지에는 축성과 함께 주 · 진이 설치되었으므로 주 · 진은 성(城)이라고도 불리었다. 여러 주 · 진은 안북(安北)과 안변(安邊)에 설치된 도호부(都護府)의 관할하에 있었다. 서경(西京)은 도호부보다 상위의 존재였지만 몇 개의 속현(屬縣)을 거느릴 뿐 주진을 갖지 않았으므로 양계는 사실상 두 도호부에 의해 통솔되었다.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에 의하면 양계의 주진군은 남도지역의 주현군과 비교해 병종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고, 또 병력수도 훨씬 많을 뿐 아니라 지휘관인 장교들의 군액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군사조직에서도 남도지역의 주현 중심의 군사도(軍事道) 편성과는 달리 양계지역은 모든 주진이 주진군의 편성단위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주진군이 주현군에 비해 보다 조직적으로 편성되고 파악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진군의 병종은 북계의 경우 초군(抄軍) · 정용 · 좌군(左軍) · 우군(右軍) · 보창(保昌)과 신기(神騎) · 보반(步班) · 백정(白丁) 등으로 구성되고, 동계는 초군 · 좌군 · 우군 · 영새(寧塞)와 공장(工匠) · 전장(田匠) · 투화(投化) · 생천군(鉎川軍) · 사공(沙工) 등으로 구성되었다. 북계에는 정용이 있는 주 · 진에는 초군이 없고 초군이 있는 주 · 진에는 정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양군은 동일한 병종의 다른 명칭으로 추측된다.

한편 서경에는 해군(海軍)과 원정양반군한인잡류(元定兩班軍閑人雜類)로 구성된 부대가 있었다. 이 중에서 초군(정용) · 좌군 · 우군 · 보창 · 영새 등이 주진군의 중심 병력을 이루었으며 그 군액은 북계가 4만여 명이고, 동계가 11,000여 명이었다. 북계의 신기 · 보반 · 백정과 동계의 공장 · 전장 · 투화 · 생천군 · 사공 등 제군은 전투 부대를 보조하는 부대로서 전체 군액은 75,000여 명이었다. 지휘관인 장교와 누락되었을 보이는 군액까지 합치면 양계의 전체 병력은 대략 14만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양계 주 · 진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은 주진군조직에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교대로 동원되다가 유사시에는 모든 병력이 동원되었다. 고려는 국초부터 북방 변경지역으로 영토를 개척하면서 남도로부터 주민을 사민시켰는데 이렇게 토착해 살게 된 이주민이 주진군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고, 또한 고려에 투화한 거란 · 여진 등 이민족들도 일부 포함되었다. 주진군의 지휘는 주1 이하 대정(隊正)까지의 장교가 담당하였는데 이들은 남도 주 · 현의 향리와 같이 양계 주 · 진의 토착 세력가였다. 최고 지휘자를 도령(都領)이라 하였으며 주진군의 규모에 따라 중낭장 또는 낭장(郎將)이 도령에 임명되었다.

양계는 이민족과 국경을 접한 지역이므로 주진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국경의 방어였다. 주진군의 주된 전술은 이른바 견벽고수(堅壁固守)로서 일단 강한 적의 침략을 받으면 성을 굳게 지키다가 적의 헛점을 틈타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술로 인해 보급로 차단이 두려운 적은 양계지역의 성들을 함락시키지 않고서는 내륙 깊숙이 침입할 수 없었다. 주 · 진의 성들은 일반적인 산성과 달리 주 · 진의 치소와 주변의 산을 연결하여 쌓은 성으로서 거주와 방어의 기능을 동시에 갖춘 것이었다. 주 · 진의 성과 함께 군사 요지에는 전방 초소의 성격을 지닌 수(戍)도 설치되었다. 소규모 방어시설인 수는 특히 장성(長城)이 지나가는 국경지역과 동해안의 요지에 주로 설치되었다.

주 · 진에는 토착주민으로 조직된 주진군 이외에 남도로부터 주2주3이 주둔하였다. 지방 주 · 현의 보승 · 정용이 개경으로 번상하여 6위(六衛)의 보승 · 정용을 구성하고 그 가운데 일부가 교대로 양계의 방수에 동원되었다. 방수군은 중앙에서 파견된 방수장군(防戍將軍)의 지휘하에 토착의 주진군과 함께 국경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방수군은 양계의 모든 주 · 진에 파견되 것이 아니라 일부 주 · 진에만 파견되었다.

기록상 확인되는 주 · 진은 의주(義州) · 인주(麟州) · 정주(靜州) · 선주(宣州) · 삭주(朔州) · 창주(昌州) · 정주(定州) 등으로 분도(分道)로도 불리었다. 분도는 하나의 큰 주를 중심으로 하여 주위에 있는 몇 개의 주 · 진을 예속시킨 것이었다. 이들 분도는 대부분 대륙에서 한반도로 통하는 관문에 위치하는 지역으로서 외적 침입의 입구이며 국방상 최전선에 해당되는 곳이다. 거란이나 몽고의 침입도 바로 이들 주 · 진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주진군과 방수군은 별개의 지휘체계하에서 각각 주진군 장교와 방수장군의 지휘를 받았으나 주진군 장교는 중앙에서 파견된 방수장군의 지휘하에 놓여 있었다. 방수장군은 무신정변 이후 무신의 지위상승에 따라 그 동안 문신이 독점하던 병마판관(兵馬判官)직을 겸하고 또한 병마판관이 겸하던 분도원까지도 겸임하여 분도장군(分道將軍)으로 불리었다.

변천

양계의 주진군조직은 몽고와의 전쟁으로 점차 붕괴되었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주 · 진의 대부분이 함락당하거나 주4로 입보(入保)하였고, 육지로 나온 후에는 주 · 진 간에 병속(倂屬)이 이루어짐으로써 주진체제와 그에 기반을 두었던 주진군조직도 붕괴되었다. 주진군의 붕괴와 함께 방수군의 번상도 단절되었다. 대몽전쟁으로 인한 농민층의 몰락과 주5으로 군역담당층의 고갈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개경과 양계지역으로의 번상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특히 몽고의 제5차 침입 이후가 되면 양계지역에는 별초군(別抄軍)의 활동 이외에 주진군이나 방수군의 활동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몽고의 침입시마다 공격목표가 되었고 남부지방에 비해 몽고군의 활동이나 주둔기간도 길었던 양계지역의 방어체제가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후 양계지역에는 동녕부(東寧府)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설치되어 일정 기간 원(元)의 직접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병제사연구』(이기백, 일조각, 1968)
「원 간섭기 고려 군제의 변화」(권영국,『14세기 고려의 정치와 사회』, 민음사, 1994)
「고려 양계 주진의 방수군과 주진군」(조인성,『고려광종연구』, 일조각, 1981)
「고려의 북진정책과 진성」(이기백,『군사』1, 1980)
「고려 양계의 도령에 대하여」(김남규,『경남대논문집』4, 1977)
「고려양계의 지배조직」(변태섭,『고려정치제도사연구』, 일조각, 1971)
「고려 양계의 주진군」(이기백,『고려병제사연구』, 일조각, 1968)
「高麗式目形止案について」(末松保和,『朝鮮學報』25, 1962)
주석
주1

고려 시대에 둔 정오품의 무관 벼슬. 장군(將軍)의 아래, 낭장(郎將)의 위로, 각 영(領)에 두 명씩 두었다. 우리말샘

주2

지방의 군사를 뽑아서 차례로 서울의 군영으로 보내던 일. 우리말샘

주3

국경을 지키는 군사. 우리말샘

주4

바다 가운데 있는 섬. 우리말샘

주5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