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부 ()

목차
관련 정보
조선시대사
제도
고려 · 조선시대 지방 행정기구.
내용 요약

도호부는 고려와 조선시대 지방 행정기구이다. 본래 중국에서 정복한 이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변방에 설치한 군사적 성격의 행정 기구였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일반 행정기구로 변화하여 전국에 설치되었다. 고려에서는 5도호부 체제로 정비되었는데 현종대에 3도호부만 남게 되는 등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조선 건국 후, 종래 각 도의 단부관(單府官)을 도호부로 고치고 종3품의 도호부사를 두었다. 도호부의 수는 점차 증가해 세종 때에 38읍, 중종 때 45읍, 고종 때에는 75개 읍이 되었다. 읍격은 목사와 군수의 중간에 해당되었다. 1894년에 군으로 통합되어 폐지되었다.

목차
정의
고려 · 조선시대 지방 행정기구.
내용

대도호부(大都護府)와 도호부의 두 가지가 있다. 도호부는 본래 중국에서 새로 정복한 이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주1에 설치했던 군사적 성격의 행정 기구였다. 고려에서도 처음에는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했으나 점차 일반 행정 기구로 변화하였다. 918년(태조 1)에 이미 평양 대도호부를 둔 적이 있지만, 곧 서경(西京)으로 승격되면서 없어졌다. 후백제를 멸망시킨 직후에도 그 도읍지인 전주에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었지만, 940년에 곧 폐지하였다.

그 뒤 951년(광종 2) 고부(古阜)에 안남 도호부를 다시 두고, 곧이어 상주(尙州)에 안동 도호부(安東都護府)를 두게 되었지만 지방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을 통제하는 구실을 하였다. 983년(성종 2)에 12목(牧)의 설치와 함께 지방제도가 정비되기 시작하면서 이 두 도호부는 폐지되었고, 그 대신 북계 지역의 영주(寧州)에 안북 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가 새로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 10도가 마련되고 절도사(節度使) · 도단련사(都團練使) · 단련사 · 자사(刺史) · 방어사(防禦使) 등을 두게 되면서 지방제도가 더욱 정비되었다. 이와 함께 풍주(豊州 : 豊山)안서 도호부(安西都護府), 김주(金州 : 金海)에 안동 도호부, 낭주(朗州 : 靈巖)에 안남 도호부, 화주(和州 : 永興)안변 도호부(安邊都護府)가 설치되어 기존의 안북 대도호부와 함께 안동 · 안서 · 안남 · 안북 · 안변의 5도호부 체제가 완성되었다.

각 도호부에는 사(使, 3품 이상) · 부사(副使, 4품) · 판관(判官, 6품) · 사록(司錄, 7품) · 장서기(掌書記, 7품) · 법조(法曹, 8품) · 의사(醫師, 9품) · 문사(文師, 9품) 등의 관속이 갖추어져 있었다. 또 경(京) · 목과 함께 계수관(界首官)으로서 주(州) · 부(府) · 군(郡) · 현(縣) · 진(鎭) 등 영군(領郡)을 통할하는 중간 기구의 구실을 대신하였다.

그러나 고려 전기의 일반적인 행정체계가 중앙 정부와 일반 군현의 주2 관계로 이루어졌으므로 도호부 등 계수관의 소임은 상표진하(上表陳賀) · 향공선상(鄕貢選上) · 외관추옥(外官推獄) 등 매우 제한된 범위에 그쳤다. 더욱이 고려 중기부터는 5도 · 양계(兩界)의 안찰사(按察使)와 병마사(兵馬使) 기구가 발달해 이러한 중간 기구의 미숙성을 극복함으로써 도호부의 계수관으로서의 구실은 더욱 축소되었다.

성종 때 일단 완성된 5도호부 체제는 이후 계속 변화하였다. 먼저 1014년(현종 5)에 안동 도호부가 상주에서 경주로 옮겨진 것을 비롯하여 1018년(현종 9)에는 안남 도호부가 낭주에서 전주로, 안서 도호부가 풍주에서 해주(海州)로, 안변 도호부가 화주에서 등주(登州 : 安邊)로 각각 옮겨져 대체로 해안에서 내륙으로 이동하는 추세를 보인다.

1022년(현종 13)과 1027년(현종 18)에는 안남 도호부와 안동 도호부가 각각 폐지되고 3개의 도호부만 남게 되었다. 그 뒤 1150년(의종 4) 수주(樹州 : 富平)에 안남 도호부가 다시 설치되고, 1197년(명종 27) 안동에 도호부가 다시 설치되어 5도호부 체제가 부활했지만, 1247년(고종 34)에 안서 도호부가 폐지되고 1308년(충렬왕 34)에는 안남 · 안동도호부가 또다시 폐지되었다.

조선 건국 후, 1413년(태종 13)에 이를 크게 정비하여 종래 각 도의 단부관(單府官)을 도호부로 고치고 종3품의 도호부사를 두었다. 1415년(태종 15)에는 군 가운데 1,000호 이상인 것은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정원은 후대로 내려올수록 증가해 세종 때 38인, 성종 때 44인, 중종 때 45인이 되었고, 고종 초에는 75인으로 격증되었다가 1894년(고종 31) 지방제도 개정 때, 군수로 통일되었다. 이들의 등용길은 지역에 따라 다른데, 연변 지방은 무과, 내륙 지방은 문과와 음서 출신이 파견되었다.

본래 중국에서는 군사적인 성격이 강하여 주로 변경에 설치되었으나, 고려 ·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분포되었다. 조선의 주3태종 때 크게 정비되어 주 · 부 · 군 · 현에 수령이 파견된 읍의 수가 330여 개에 달하였다. 도호부의 수는 후기에 갈수록 증가해 세종 초에 38읍이던 것이 중종 때 45읍, 고종 때에는 75개 읍으로 격증되었다. 읍격(邑格) 상 목사와 군수의 중간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1894년에 군으로 통합되어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종실록(太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한국중세사회사연구』(이수건, 일조각, 1984)
『고려지방제도의 연구』(하현강, 한국연구원, 1977)
「조선초 지방통치체제의 정비와 계수관」(이존희, 『동국사학』15·16 합집, 1981)
「고려전기의 외관제: 지방기구의 행정체계」(변태섭, 『한국사연구』2, 1968 ; 『고려정치제도사연구』, 일조각, 1971)
「고려지방제도의 정비와 주현군의 성립」(이기백, 『조명기박사화갑기념불교사학논총』, 중앙도서출판사, 1965 ; 『고려병제사연구』, 일조각, 1968)
「고려시대 주부군현의 영속관계와 계수관」(윤무병, 『역사학보』17·18 합집, 1962)
주석
주1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    우리말샘

주2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    우리말샘

주3

전국을 군(郡)으로 가르고 이를 다시 현(縣)으로 갈라, 중앙 정부에서 지방관을 보내어 직접 다스리던 제도.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 때에 지방 분권적인 봉건 제도의 약점을 없애기 위하여 실시한 중앙 집권적 성격을 띤 지방 행정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에 들여와 실시하였다.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