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기구.
개설
내용
918년 평양도호부를 설치해 여진족의 노략질을 대비했으나 평양도호부가 서경(西京)으로 승격하면서 북경(北境) 개척의 기지를 더욱 전진시켜 안주에 도호부를 설치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반란이나 외적 침입을 막는 데 지대한 구실을 하였다.
1219년(고종 6) 10월 의주별장 한순(韓恂)과 낭장 다지(多智)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오직 안북도호부와 구주(龜州) · 연주(延州) · 성주(成州) 등은 성을 굳게 지켰다. 또한 묘청(妙淸)의 난과 조위총(趙位寵) · 김보당(金甫當)의 난 때 안북도호부에서 반란군을 잡아올렸다. 이는 남방 도호부의 성격을 띠는 예이다.
1010년(현종 1) 11월 거란이 침입했을 때, 안북도호부사 공부시랑 박섬(朴暹)이 성을 버리고 도망가서 백성들이 모두 흩어졌다거나, 몽골 침입 시 사르타이〔撒禮塔〕가 안북도호부에 있으면서 개경 정부와 강화를 교섭했던 사실, 1130년(인종 8) 12월 백성들이 창주(昌州) · 삭주(朔州) 등지에 가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금나라와 공식으로 약속한 것을 안북도호부에서 보고한 사실은 북방 도호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종 때 제정된 외관록(外官祿)에 따르면, 안북대도호부 부사는 120석, 판관은 86석10두, 사록 겸 장서기(司祿兼掌書記)는 40석, 법조(法曹)는 20석을 받았다. 도호부 내의 주현군(州縣軍)은 도령중랑장(都領中郞將) 1인, 중랑장 2인, 낭장 7인, 별장(別將) 14인, 교위(校尉) 28인, 대정(隊正) 58인, 행군(行軍) 1,515인을 두었다.
초군(抄軍) 16대(이 중 마병 4대), 우군(右軍) 4대(이 중 마병 1대), 좌군(左軍) 26대(이 중 마병과 활쏘는 군대인 弩兵을 각각 2대 두었으며, 保昌 7대, 白丁 27대를 두었다.)로 구성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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