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병부상서, 서경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북계(北界)와 동계(東界)의 여러 성에 격문을 보내어, 개경의 중방(重房)이 북계의 여러 성을 토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내었으니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당할 수 없다고 선동하자, 절령(岊嶺) 이북의 40여 성이 모두 내응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윤인첨(尹鱗瞻)을 원수로 한 토벌군을 보내왔으나 절령역에서 크게 패퇴시키고 개경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최숙(崔淑) 등이 거느린 기병 수십 명의 기습을 받고 패하여 서경으로 퇴거하였으나 여세를 몰아 대동강까지 추격해온 관군을 물리쳤다.
조정에서 다시 윤인첨을 원수로 한 토벌군을 보내 서경을 공격하는 한편 항복을 권유하자 금나라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 일을 맡은 김존심(金存心)이 배반하여 윤인첨에게 항복함으로써 실패하였다.
다시 서언(徐彦)을 보내 절령 이북의 40여 성을 들어 금나라에 내속하기를 청하고 원병을 요청하였으나 금나라 황제는 도리어 서언을 잡아 고려에 보내왔다. 그 뒤 1176년 정부군의 협공으로 서경이 함락되고, 조위총도 사로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조위총 반란의 성격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 무신정권 초기의 수난문인」(이흥종, 『사학지』28, 1995)
- 「무신정권기의 반무신란의 성격: 김보당의 난과 조위총의 난을 중심으로」(변태섭, 『한국사연구』19,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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