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의경(儀卿). 황해도 은율 출신. 곽인저(郭麟著)의 아들이다.
186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1877년 1월(고종 14) 상소를 올려, 금양(禁釀) 등의 법령을 호귀가(豪貴家)에서 먼저 어기고 있다면서 이를 엄중히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의정부는 이 상소를 토대로 역시 같은 내용을 왕에게 건의하여 국왕은 이를 받아들였다.
또, 1881년 김홍집(金弘集)이 국내에 반입한 황준헌(黃遵憲)의 저서 『조선책략(朝鮮策略)』과 관련, 척사상소가 빗발치는 가운데 약간 다른 내용의 상소를 올려 주목을 끌었다.
여기에서 곽기락은 기본적으로는 정학(正學)을 받들고 이단을 배격한다는 위정척사의 입장에 서 있었지만, 자강(自强)을 위해서는 서양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는 채서(採西) 내지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