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홍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장례원경, 시종원경, 귀족원경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화일(華一)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청풍(淸風)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5년(헌종 11)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찬승 (목포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0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장례원경, 시종원경, 귀족원경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화일(華一). 서울 출신. 김학성(金學性)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64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89년 전라도관찰사, 1891년 형조판서, 1892년 예조판서, 1893년 공조판서 · 경기도관찰사, 1894년 황해도관찰사를 지냈다.

1894년 7월 개화파정권에 의해 탄핵을 받아 면직되고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개화파정권이 아관파천에 의해 붕괴된 뒤 건양 · 광무연간에 다시 등용되었다. 중추원의관 · 의정부참정 ·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 태의원경(太醫院卿) · 장례원경(掌禮院卿) · 시종원경(侍從院卿) · 귀족원경 등을 역임하였다.

1898년 11월 만민공동회가 개최되고 있을 때, 한성부내 각처에서 민회를 빙자하여 소요를 일으키고 민간인을 구타하여 가옥을 파괴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면서, 한성부판윤과 경무사를 견책할 것을 상주하기도 하였다.

1902년 5월에는 황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양경제도(兩京制度)를 둘 것을 제안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03년 8월에는 북간도에 이주한 많은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북간도에 보호관을 둘 것을 상주하여 고종의 허락을 얻어내었다. 그 결과 이범윤(李範允)이 북간도의 한인을 보호하는 관리로 처음 파견되었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독립신문』

  • - 『황성신문(皇城新聞)』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2

    : 김규홍의 상소 : 『고종실록』 43권, 1903년(고종 40) 8월 11일. "이범윤을 특별히 관리로 임명하여 북간도에 주재시키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