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권택(權澤). 본관은 안동(安東). 전라남도 나주 출신.
1907년 6월 전라남도에서 봉기한 기삼연(奇參衍)의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기삼연이 순국하자, 1907년 11월 심남일(沈南一)의 의병부대에 들어가 모사(謀事)가 되었다.
이후 1908년 10월까지 심남일 부대에 속하여 전라남도 영광·강진·장흥·남평 등지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여하였다. 조경환(曺京煥)의 의병부대에 들어가 역시 모사로서 같은 해 12월경까지 함평·광주 등지의 전투에도 참가하였다.
1908년 12월에는 박민홍(朴珉洪) 의병부대의 참모장이 되어 나주·남평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9년 1월 2일에는 휘하 40여 인의 의병과 함께 무안읍내에서 일본경찰을 사살하고 피신하여 신분을 속이고 구세군의 부위(副尉)가 되었다가, 1909년 9월 장흥군 눌양리에서 일본군에 의해 붙잡혔다.
1910년 4월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그해 7월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