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 창설에 참여하였고, 조선의용대 비서장, 임시정부 내무부차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육군대령, 수도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 관료 · 독립운동가.
이칭
백인(百忍), 양무(揚武)
이칭
권중환(權重煥), 장수화(張樹華)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5년(고종 32)
사망 연도
1959년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경상북도 상주
관련 사건
동양척식회사 투탄사건|동경 니쥬바시투탄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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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 창설에 참여하였고, 조선의용대 비서장, 임시정부 내무부차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육군대령, 수도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 관료 ·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원명은 권중환(權重煥), 가명은 장수화(張樹華), 호는 백인(百忍) 또는 양무(揚武). 경상북도상주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경성공업전습소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다.

1920년 길림에서 의열단 창단에 참여하고, 1921년 북경에서 동지들과 의열단(義烈團)을 창단하고, 이후 의열단의 종로경찰서·총독부·동양척식회사에의 투탄사건과 동경 니쥬바시투탄의거[二重橋投彈義擧] 때 자금조달의 활동을 하다가 국내에서 잡혀 일시 옥고를 겪은 뒤 다시 상해로 망명하였다.

1924년 상해에서 열린 중국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 참관인으로 참석, 손문(孫文)의 추천장을 받아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에 들어가 군사학을 전공, 졸업 후에는 손문의 북벌전쟁에 참여하였다. 1932년난징[南京]에서 국민당의 원조를 받아 한국인 군사학교를 설립하여 간부를 양성하였다.

1937년 조선의용대 비서장으로서 항일무한방위전(抗日武漢防衛戰)에 참가하였다. 1942년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휘하의 광복군에 합류할 때 임시정부에 들어가 1944년에 내무부차장이 되었다.

광복 직후 무한지구 교포선무단장과 광복군 제5지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946년 12월 귀국하였다. 1948년 정부수립 후 육군대령으로 특채되어 제106여단장·초대 수도경비사령관·103사단장·서부지구경비사령관 등을 지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2)
『조선의용군』(현용순·이정식·한홍구편, 항전별곡, 1986)
『약산(若山)과 의열단(義烈團)』(박태원, 백양당, 1947)
「임시정부관계문서(臨時政府關係文書)」(대한민국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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