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 주동자 중의 한 사람. 강홍복(姜弘卜)의 아들이다. 서울 청파(靑坡)에 살았다.
1882년 6월 5일 선혜청(宣惠廳) 도봉소(都捧所)에서 무위영(武衛營) 소속의 구 훈련도감 군병들에게 군료(軍料)를 지급할 때, 김춘영(金春永)·유복만(柳卜萬) 등과 함께 선혜청고직(宣惠廳庫直)과 무위영영관(武衛營營官)을 구타하여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6월 9일 김장손(金長孫)·유춘만(柳春萬)이 이끄는 군민들의 포도청 습격에 의하여 풀려나, 다음날 김장손·유춘만 등과 함께 군민을 이끌고 창덕궁에 들어갈 때 입궐을 선창하였다 한다.
7월 16일 청나라군사의 이태원 습격 때 체포되어 혹독한 심문을 받고, 8월 24일 김장손 등 다른 군병 7인과 함께 군기시(軍器寺) 앞길에서 능지사(凌遲死)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