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때, 임오군란 당시의 군인.
개설
임오군란 주동자 중의 한 사람. 강홍복(姜弘卜)의 아들이다. 서울 청파(靑坡)에 살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2년 6월 5일 선혜청(宣惠廳) 도봉소(都捧所)에서 무위영(武衛營) 소속의 구 훈련도감 군병들에게 군료(軍料)를 지급할 때, 김춘영(金春永)·유복만(柳卜萬) 등과 함께 선혜청고직(宣惠廳庫直)과 무위영영관(武衛營營官)을 구타하여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6월 9일 김장손(金長孫)·유춘만(柳春萬)이 이끄는 군민들의 포도청 습격에 의하여 풀려나, 다음날 김장손·유춘만 등과 함께 군민을 이끌고 창덕궁에 들어갈 때 입궐을 선창하였다 한다.
7월 16일 청나라군사의 이태원 습격 때 체포되어 혹독한 심문을 받고, 8월 24일 김장손 등 다른 군병 7인과 함께 군기시(軍器寺) 앞길에서 능지사(凌遲死)로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일성록(日省錄)』
- 『추안급국안(推案及鞠案)』
- 『한국최근정치사』(이선근, 정음사, 1950)
- 「역사수상-임오년에 다시 보는 120년 전의 '임오군란'」(김정기, 『역사비평』, 2002)
- 「임오군변」(권석봉,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 『近代日鮮關係の硏究』(田保橋潔, 朝鮮總督府中樞院,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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