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 백중놀이 (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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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연산 백중놀이
연산 백중놀이
민속·인류
놀이
국가유산
칠월 칠석을 전후하여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리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이 동참하여 기세배와 풍장솜씨를 펼치며 노는 민속놀이.
시도무형유산
지정 명칭
연산백중놀이(連山百中놀이)
분류
지정기관
충청남도
종목
충청남도 시도무형유산(1991년 07월 09일 지정)
소재지
충청남도 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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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칠월 칠석을 전후하여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리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이 동참하여 기세배와 풍장솜씨를 펼치며 노는 민속놀이.
내용

1991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본디 계룡시 두마면 왕대리에서 오래 전에 시작되어 연산 장터로까지 확대되어 행해지다가 일제 때 단절된 것을 최근 연산 쪽에서 재현하여 계승하고 있다.

칠월 칠석을 전후하여 인근 여러 마을들이 동참하여 기세배를 하고 풍장솜씨를 마음껏 펼치며 노는 합동풍물놀이이다. 이 놀이는 조선 초기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金國光)의 묘를 두마면 왕대리 재실말에 쓰면서 두레패를 동원한 데에서, 혹은 여러 사람이 이 묘터를 밟아주어야 좋다는 풍수설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이 놀이가 이 지역 광산 김씨의 영향력에 의해 주도되고 발전되어왔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로 인해 왕대리는 이 놀이에서 우두머리 마을인 도좌상(都座上)을 변함없이 지켜와, 이 마을에 기인사를 하러 온 마을 수가 보통 12개, 많게는 27개 마을에까지 달했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두마면 외의 마을까지 포함되어 있음에서 도좌상마을의 권위와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참여 마을이 대규모인 만큼 놀이 당일에는 먼 곳에서까지 구경을 올 정도로 큰 성황을 이루었는데, 근대 무렵부터 지역 유력인사의 후원으로 이러한 연합대동놀이 분위기가 연산으로까지 확산되었으며, 1940년대 초부터 단절되었던 것을 1989년에 연산에서 부활시켜 전승이 이어지게 되었다.

여기에 소요되는 음식비용은 도좌상마을의 부농과 광산 김씨 유지들이 다 부담해왔다. 현재 재현된 연산백중놀이의 내용은 본디 전승되던 것을 공연효과를 고려하여 약간 다듬어 정리한 것으로, ① 길놀이 마당, ② 기싸움 마당, ③ 기세배 마당, ④ 농신제 마당, ⑤ 상벌과 머슴놀이 마당, ⑥ 뒤풀이 마당 등 여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놀이는 특정 토반(土班:붙박이 양반)의 영향력과 반촌(班村양반이 많이 사는 동네)적 전통에 의해 지배 · 주도되었으며 참여 마을의 수가 아주 대규모였다는 점에서 예사 백중놀이나 칠석합두레풍장놀이와 차이점이 있다. 1990년 10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1991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논산(論山)의 민속』(논산문화원, 1992)
「논산지역의 합두레먹이」(황인덕, 『충청문화연구』 3,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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