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는 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이다. 동쪽은 경상남도 함안군 · 창원시, 남쪽은 경상남도 고성군 · 사천시, 서쪽과 북쪽은 경상남도 하동군 · 산청군 · 의령군과 접한다.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이 3,800여 명의 병력으로 약 3만 명의 왜군을 물리쳐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 전투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대첩이다. 문화 행사로 개천예술제,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 진주민속소힘겨루기 등이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12.94㎢이고, 인구는 33만 8785명이다. 진주시청은 상대동에 있다.
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진주시는 동쪽은 경상남도 함안군 · 창원시, 남쪽은 경상남도 고성군 · 사천시, 서쪽은 경상남도 하동군, 북쪽은 경상남도 산청군 · 의령군과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7°53′~128°22′, 북위 35°03′~35°26′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이 3,800여 병력으로 약 3만 명의 왜군을 물리쳐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 전투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주1이다. 대표적인 문화 행사로 개천예술제,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 진주민속소힘겨루기 등이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12.94㎢이고, 인구는 33만 8785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문산읍], 15개 면[금곡면 · 금산면 · 내동면 · 대곡면 · 대평면 · 명석면 · 미천면 · 사봉면 · 수곡면 · 이반성면 · 일반성면 · 정촌면 · 지수면 · 진성면 · 집현면], 14개 행정동[천전동 · 성북동 · 중앙동 · 상봉동 · 상대동 · 하대동 · 상평동 · 초장동 · 평거동 · 신안동 · 이현동 · 판문동 · 가호동 · 충무공동], 33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주시청은 상대동에 있다.
지형은 소백산맥이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고, 중앙부에 남강이 관류하며 시가지를 북부와 남부로 양분하여 저곡부를 따라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북쪽에 비봉산(飛鳳山: 139m), 남쪽에 망진산(望晉山: 172m), 동쪽에 선학산(仙鶴山: 137.4m) 등 100m 내외의 낮은 산들이 외곽 지구에 위치하여 저평한 시가지를 둘러싸는 형세를 취하며, 동쪽과 남쪽은 남강 유역의 평야부로 되어 있다. 시가지를 둘러싼 주변부는 북부, 서부,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소백산맥의 지맥이 뻗어 내려 산지 지형이 나타나며, 중앙부와 남부 지역은 평야와 완만한 구릉성 저지대로 형성되어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산으로 북서쪽에 광제봉(廣濟峰: 400m) · 국사봉(國師峰: 228m), 북쪽에 천황산(天皇山: 364m), 동쪽에 영봉산(靈鳳山: 395m) · 방어산(防禦山: 530m) 등이 있다. 그 밖에 월아산(月牙山: 471m)과 장군대산(將軍臺山: 482m) 등이 있다.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시의 북부 중앙을 곡류하면서 유역에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남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는 북부의 미천면에서 발원한 향양천, 고성군 송구산(松求山: 527m)에서 발원하여 금곡면 · 문산읍을 지나며 북류하는 영천강, 산청군 감투봉(敢鬪峰: 768m)에서 발원하여 단성면 · 수곡면을 지나며 진양호로 흘러드는 덕천강 등이 있다.
남강은 하천의 범람이 잦아 1969년 홍수 방지 및 관개, 발전의 목적으로 주2을 구축하였다. 나동면 삼계리와 판문동 사이에 댐을 막아 인공호인 진양호를 만들었는데, 물을 사천만으로 방류하는 방법으로 가화천의 유로를 변경하는 등의 공사를 통해 낙동강 및 남강 하류 지역의 수해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댐공사로 대평면 · 나동면 일부 지구가 수몰되었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 다습한 해양성기후의 특성을 띤다. 19912020년 평년값에 따르면 연평균기온은 13.4℃이며, 겨울[122월] 평균기온은 1.7℃, 여름 [6~8월] 평균기온은 24.3℃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518㎜ 내외이다.
지질은 중앙의 서부 일대에는 선캄브리아기의 변성퇴적암과 화강편마암이 분포되고 있으나, 대부분 지역이 백악기 경상계 지층의 신라통과 낙동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생은 온대 남동 지구의 유형에 속해 편백 · 해송 · 리기다소나무 · 오동나무 · 탱자나무 · 대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남강 유역을 따라 지수면 승내리와 대평면 내평리에서 구석기시대 석기로 추정되는 석영암제의 수많은 석기가 발견되었다. 또한 수곡면과 금산면, 금곡면, 대평면에서 신석기시대 유물이, 유곡동과 대평면, 집현면에서는 청동기시대 유물이 조사되었다. 이러한 유적들로 보아 진주 지역에서는 적어도 서기전 2000년경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후기에 진주 지역은 백제의 영역으로 거열주(居列州)[거열성(居列城)]라 불렸으나, 이후 신라에 병합되었다. 신라는 685년(신문왕 5) 9주 체제를 정비하면서 거열주를 청주(菁州)로 고치고 총관을 두었고, 757년(경덕왕 16)에는 전국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개편하면서 청주를 강주(康州)로 바꾸었다. 이후 799년(소성왕 1) 강주를 다시 청주로 고쳤다가, 825년(헌덕왕 17)에는 다시 강주로 환원하고 도독(都督)을 두었다.
936년(태조 19) 후백제의 신검(神劍)이 강주도독 양검(良劍), 무주도독 용검과 함께 왕건(王建: 1335~1408)에게 항복하며 강주는 고려에 영속되었다. 940년 강주를 진주로 개칭하였다. 983년(성종 2)에는 12목 가운데 하나로 진주목(晉州牧)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 5월에는 12목이 13절도사로 개편되면서 진주는 진주정해군절도사(晉州定海軍節度使)로 승격되었고, 같은 해 9월에 전국이 10도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산남도에 소속되며 영(營)이 설치되었다.
1171년(명종 1)에는 경상주도(慶尙州道)와 진협주도(晉陜州道)로 분리되어 이 지역은 진협주도에 속하였고, 1186년(명종 16)에는 두 도가 다시 통합되면서 경상주도에 편입되었다. 1204년(신종 7)에는 경상주도가 경진안동도(慶晋安東道)로 개칭되었고, 1298년(충렬왕 24)에는 다시 경상진안도(慶尙晋安道)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후 1314년(충숙왕 1)에는 경상진안도가 경상도(慶尙道)로 개칭되었으며, 1379년(우왕 5)에는 진주성(晉州城)이 축성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1392년(태조 1) 진주는 태조(太祖) 현비(顯妃: 1356~1396)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진양으로 고치고, 대도호부로 승격되어 진양대도호부사가 부임하였다. 1402년(태종 2)에는 다시 지명을 진주로 환원하고, 대도호부를 목(牧)으로 개편하였다. 1466년(세조 12)에는 지방 군사조직으로 경상도우부 진주진관을 설치하였고, 1519년(중종 14) 경상도를 좌 · 우도로 나누면서 진주목은 경상우도에 속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 1554~1592)이 3,800여 장졸을 이끌고 진주성을 침공한 약 3만 명의 왜군을 상대로 끝까지 항전하여 대승을 거두었으며, 이 전투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대첩으로 기록되었다. 1635년(인조 13) 종래의 4면, 111리의 진주목 방리를 4면, 62리로 통폐합되었다. 1832년(순조 32) 『진주목읍지(晋州牧邑誌)』가 완성되었고, 1862년(철종 13)에는 진주민란이 발생하였다
1895년(고종 32)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로 나누는 가운데 진주부에 영(營)이 설치되어 관찰사가 파견되었고, 기존의 진주목은 진주군으로 개칭되어 군수가 부임하였다. 1914년 전국의 317개 군을 218개 군으로, 4,315개 면을 2,517개 면으로 통폐합할 때, 진주군은 부화곡면을 함안군에 이속하고 함안군의 상봉면 · 하봉면 · 상사면을 편입하였다. 1931년 4월, 진주군의 중심지였던 진주면이 진주읍으로 승격하였고, 1932년에는 진주읍 소관의 7동, 3리가 17정으로 개편되면서 당시 진주군은 1읍, 18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39년 10월 1일 진주읍이 진주부로 승격 개편되어 부윤이 파견되었고, 이와 함께 진주군은 진양군으로 개칭되었다. 이때 진주부는 17정, 12리를 관할하였다.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의 시행으로 진주부가 진주시로 개칭되고, 시장을 두었다. 또한 종래의 17정, 12리가 37동으로 개편되었다. 1973년 7월 1일 진양군 정촌면 가좌리 · 호탄리, 내동면 귀곡리가 진주시에 편입되었다. 1990년 3월 22일 망경남 · 북동을 망경동으로, 상봉동 · 서동을 상봉동으로, 수정남 · 북동을 수정동으로, 옥봉남 · 북동을 옥봉동으로, 상평동 · 서동을 상평동으로, 초전남 · 북동을 초전동으로, 이현남 · 북동을 이현동으로, 판문남 · 북동을 판문동으로 통합하였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都農統合)에 따라 진양군과 진주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진주시가 탄생하였다. 이어 3월 1일에는 문산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10월 17일에는 문산읍 동물리를 두산리로, 갈촌리를 갈곡리로, 진성면 중촌리를 동산리로, 이천리를 구천리로, 지수면 승내리를 승산리로 개칭하였다.
구석기시대 유적이 대평면 내촌리에서 발견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대평면 상촌리에서 주거지와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櫛文土器)], 화장한 뼈를 담은 옹관과 환호 등이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유적으로 귀곡동 대촌 지석묘 [고인돌]는 3기만 남아 있고 동시대의 대촌 주거지는 원형이다.
진성면의 상촌리 지석묘군은 강변을 따라 1㎞의 범위 안에 모두 21기의 지석묘가 분포한다. 이반성면의 장안리 지석묘에서는 마제석검과 마제석촉이 출토되었으며, 대곡면의 유곡리 지석묘군에는 기반식 지석묘 9기가 산재한다. 진주옥봉고분군(晋州玉峰古墳群)[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은 6세기경에 축조된 고분군으로 백제와 대가야의 관계 규명에 단서가 되는 고분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분묘 유적으로는 진주 평거동 고분군(晋州 平居洞 古墳群)[사적, 1968년 지정]과 미천면 오방리의 진주 하륜 묘역[경상남도 기념물, 1977년 지정], 수곡면의 진주 수곡 팔각형 분묘군[경상남도 기념물, 1977년 지정], 명석면의 진주 강수명 묘역[경상남도 기념물, 1977년 지정]이 있다.
성곽 유적으로 대표적인 곳은 진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성이다. 1379년(우왕 5)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 ?~?)이 본래 토성이던 것을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성대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지수면 청원리의 방어산성, 대곡면 대곡리의 죽방산성이 있다. 호탄동 성지는 임진왜란 때 왜장 가와가미[川上久智]가 명군의 도강을 저지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진주 망진산 봉수대(晉州 望晉山 烽燧臺)[경상남도 기념물, 2024년 지정]는 사천안점산봉수대(泗川鞍岾山烽燧臺)[경상남도 기념물, 1998년 지정]에서 진주광제산봉수대(晋州廣濟山烽燧臺)[경상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로 전하는 봉수였으나 흔적만 남아 있다.
진주시에는 두방사(杜芳寺), 성전암(聖殿庵), 연화사(蓮華寺), 응석사(凝石寺), 의곡사(義谷寺), 청곡사(靑谷寺), 총림선원(叢林禪院), 호국사(護國寺) 등 여러 전통 사찰이 분포해 있다. 이들 사찰에 다양한 불교 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山淸 泛鶴里 三層石塔)[1962년 지정],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靑谷寺 靈山會 掛佛幀)[1997년 지정]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산청 사월리 석조여래좌상(山淸 沙月里 石造如來坐像)[1963년 지정], 이반성면 용암리의 진주 용암사지 승탑(晉州 龍巖寺址 僧塔)[1963년 지정], 수곡면의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晉州 妙嚴寺址 三層石塔)[1963년 지정], 상봉서동의 진주 삼선암 동종(晋州 三仙庵 銅鍾)[2010년 지정], 진주 청곡사 목조제석천 · 대범천의상(晋州 靑谷寺 木造帝釋天 · 大梵天倚像)[1995년 지정],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晉州 月明庵 木造阿彌陀如來坐像)[2010년 지정], 진주 응석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晉州 凝石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2010년 지정], 진주 청곡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晉州 靑谷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2010년 지정], 진주 청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晉州 靑谷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2010년 지정]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응석사에 있는 진주 응석사 대웅전(晉州 凝石寺 大雄殿)[1976년 지정], 금산면 갈전리의 진주 청곡사 대웅전(晉州 靑谷寺 大雄殿)[1972년 지정]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기록유산으로는 이제 개국공신교서(李濟 開國功臣敎書)가 201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990년 보물로 지정된 김광려 삼남매 화회문기(金光礪 三男妹 和會文記)는 1480년(성종 11)에 작성된 조선시대의 재산 분배 기록이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719(分類杜工部詩(諺解) 卷十七十九)[2011년 지정], 한호 필적 - 한석봉증유여장서첩(韓濩 筆蹟 - 韓石峯贈柳汝章書帖)[1991년 지정], 권근 응제시주(2005)(權近 應製詩註(2005))[2005년 지정], 오희문 쇄미록(吳希文 瑣尾錄)[1991년 지정], 이운룡 선무공신교서 및 관련 고문서(李雲龍 宣武功臣敎書 및 關聯 古文書)[1994년 지정],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金時敏 宣武功臣 敎書)[2006년 지정], 정조어필 - 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正祖御筆 - 贐提學鄭民始出按湖南)[2010년 지정], 복재선생집(復齋先生集)[2023년 지정] 등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진주검무(晋州劍舞)[1967년 지정]와 진주삼천포농악(晋州三千浦農樂)[1966년 지정]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한량무(閑良舞)[1979년 지정]와 장도장(은장도)(粧刀匠(銀粧刀))[1987년 지정]은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옥봉동의 진주향교(晋州鄕校)[1972년 지정]와 남성동의 진주 창렬사(晋州 彰烈祠)[1983년 지정]가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또 금곡면 죽곡리의 진주 남악서원(晋州 南岳書院)[1983년 지정], 지수면 압사리의 진주 용강서당(晋州 龍江書堂)[1983년 지정], 본성동의 진주 의기사(晋州 義妓祠)[1983년 지정], 귀곡동의 진주 충의사(晋州 忠毅祠)[1983년 지정]와 대평면 하촌리의 진주 도통사(晋州 道統祠)[1983년 지정] 등은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고건축물로는 본성동의 진주 촉석루(晉州 矗石樓)[2020년 지정]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남성동의 진주성 북장대(晉州城 北將臺)[1983년 지정], 진주성 서장대(晉州城 西將臺)[1983년 지정], 진주 영남포정사문루(晉州 嶺南布政司門樓)[2020년 지정], 사봉면 사곡리의 진주 우곡정(晉州 隅谷亭)[1983년 지정], 대평면 대평리의 진주 고산정(晉州 孤山亭)[1983년 지정], 신풍리의 진주 동산재(晉州 東山齋)[1983년 지정]는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고가옥으로는 대곡면의 진주 마진리 이씨고가(晋陽 麻津里 李氏古家)[1985년 지정]와 지수면의 진주 청원리 이씨고가(晋陽 淸源里 李氏古家)[1985년 지정]가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비석류로는 본성동에 있는 김시민 전공비(金時敏 戰功碑)[1972년 지정]를 비롯해 진주 쌍충 사적비(晋州 雙忠 事蹟碑)[1972년 지정], 진주 촉석 정충단비(晋州 矗石 旌忠檀碑)[1972년 지정], 진양 부원군 신도비(晋陽 府院君 神道碑)[1980년 지정], 진주 김해김씨비각(晋州 金海金氏碑閣)[1976년 지정] 등이 모두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곡면 원계리의 진주 이충무공 진배미유적지[1974년 지정]와 옥봉동의 진주 강민첨 탄생지(晋州 姜民瞻 誕生地)[1974년 지정]는 각각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명석면 신기리에 위치한 진주 명석 자웅석(晋州 鳴石 雌雄石)[988년 지정]은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밖에 남성동 국립진주박물관에 있는 고려~조선시대 유물인 중완구(1986-1)(中碗口(1986-1))와 현자총통(1986)(玄字銃筒(1986))은 1986년에 각각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상남도 자연유산으로는 집현면의 진주 정평리 무환자나무와 금곡면의 진주 동예리 느티나무가 있다. 진주 정평리 무환자나무는 1990년에, 진주 동예리 느티나무는 1991년에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25년 3월에 각각 경상남도 자연유산으로 재지정되었다.
전통 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진주향교가 일찍부터 건립되어 있었다. 진주 출신으로 조선 전기에 영의정을 역임한 하연(河演: 13761453)의 「사교당기(四敎堂記)」에 따르면, 고려 목종(穆宗: 9801009) 이전에 진주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 교관 강원량(姜元亮: ??)이 진주향교의 강당인 사교당(四敎堂)을 세우고, 1558년(명종 13) 목사 김홍(金泓: 14901561)이 동재(東齋) · 서재(西齋) · 명륜당(明倫堂), 풍화루(風化樓)를 중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탔다. 이후 1603년(선조 36)부터 1607년까지 병사 이수일(李守一: 15541632)과 김태허(金太虛: 15551620)가 중건을 하였다. 진주향교는 강민첨(姜民瞻: 9631021), 강군보(姜君寶: ?1380), 하륜(河崙: 13471416), 정을보(鄭乙輔: ??), 정이오(鄭以吾: 13471434), 하연(河演: 13761453) 등을 배출하며 경상우도 유림의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하였다.
향교 외에도 공립 교육시설로 서재가 있었다. 1566년(명종 21) 진주목사 방승임이 부임한 후 동서남북 각 면에 서재를 설치하였는데, 문산면 서직골의 동면서재(東面書齋), 수곡면 대천리 서직골의 서면서재(西面書齋), 정촌면 대축리 딧재서지먼당의 남면서재(南面書齋), 집현면의 북면서재(北面書齋), 정촌면 가좌리의 가좌촌서재, 원당리의 원당서재(元堂書齋) 모두 지역 유생들의 수학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사설 교육시설로는 조선 중 · 후기에 설립되어 지역의 유생 교육과 선현 제향을 담당한 서원이 있었다. 1610년(광해군 2) 수곡면 사곡리에 진주 대각서원(大覺書院)[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2004년 지정], 1702년(숙종 28) 금산면 가방리에 임천서원(臨川書院), 1718년(숙종 44) 집현면에 신당서원(新塘書院), 1720년(경종 즉위년) 정촌면에 정강서원(鼎岡書院), 1772년(영조 48) 금산면 장사리에 경림서원(慶林書院)이 각각 설립되었다. 또 1838년(헌종 4)에 설립된 도동서원(道洞書院)과 1841년에 설립된 평천서원(平川書院)이 있었는데 모두 고종(高宗: 1852~1919) 때 철폐되었다.
한편, 1607년(선조 40)에 사액된 진주 창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제현들의 충절을 기리는 사우로서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896년(고종 33) 경상남도공립소학교가 설립된 것을 시초로 1909년(융희 3) 사립 봉양학교가 개교하였다. 이 학교는 후에 공립으로 전환되어 현재의 봉래초등학교가 되었다. 1910년에는 경남과학기술대학교의 전신인 진주공립실업학교가 개교하였다. 1925년에는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가 개교하여 중등교육이 실시되었으며, 1940년에는 관립 진주사범학교가 설립되어 사범교육을 실시하였다. 광복 후인 1948년에는 도립 진주농과대학이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1972년 경상대학으로 개편되었으며, 1980년에는 종합대학교인 경상국립대학교로 승격되었다.
2025년 3월 1일 기준 진주시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6개, 중학교 24개, 고등학교 23개가 있다. 고등 교육기관으로는 진주교육대학교와 경상국립대학교가 있으며, 진주보건대학교, 연암공과대학교 등 전문대학도 위치해 있다.
대표적인 문화 행사로는 1949년 ‘영남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개천예술제’가 있다. 이 축제는 지역의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자주 독립의 정신을 기리고 예술 문화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시작된 종합 문화 예술제로, 2024년과 2025년 연속으로 경상남도 지정 최우수 축제로 선정되었다. 매년 서제(序祭)와 개제식, 가장행렬을 비롯해 예술 경연 및 문화 행사 등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해 왔다.
한편, ‘진주남강유등축제’는 1592년 진주성대첩 당시 왜군의 남강 도하(渡河)를 저지하기 위한 군사 전술이자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유등이 사용되었다는 설에서 유래한 행사이다. 본래 개천예술제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던 ‘유등대회’를 2000년부터 ‘진주남강유등축제’로 특화한 것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또한 진주시의 대표 축제로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진주민속 소힘겨루기대회’, ‘진주 M2(뮤직&미디어) 페스티벌’, ‘진주국제농식품박람회’, ‘진주논개제’, ‘진주탈춤한마당’ 등이 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1984년에 남성동에 소재한 진주성 내에서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에는 가야 문화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였으며, 1998년에 역사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다. 그 외에 본성동에 진주향토민속관이 있다. 칠암동에 자리한 경남문화예술회관은 다목적 발표 공간으로, 종합 문화예술의 전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진주 지역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소싸움이 있다. 소싸움은 8월 추석 무렵에 남강 백사장에서 벌어졌다. 이 소싸움의 유래는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 기념 잔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에서 농우(農牛)를 많이 잡아먹어서 소들을 위령(慰靈)하기 위하여 시작했다는 설, 고려 후기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는 설 등이 구전되고 있다. 요즘도 추석이나 개천예술제 때에 진주공설운동장 혹은 남강 변 고수부지에서 소싸움이 열린다.
대표적인 전설 및 설화로는 「운돌전설」, 「비봉산과 봉알자리」, 「나막신쟁이의 날」, 「무학대사와 진주의 지맥」, 「용다리의 슬픈 짝사랑」, 「처녀골」, 「순천봉」, 「공북당」, 「대나무 열매」, 「상소광 강응룡」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각 지역마다 전설 및 설화가 전해지는데, 문산읍에서는 「조판서의 묘」, 「용두산」, 진성면의 「월아산」, 사봉면의 「만고효자 김진옥」, 「장자못」, 「마성」, 「사곡」, 「백야촌」, 「눈 뜬 청맹 정온」이 전해 온다. 또한 지수면의 「방어산」, 대곡면의 「베 팔아 산 이야기」, 「제 복에 사는 딸」, 「글풀이 재판」, 「아내 효부만든 효자」, 「부모입에서 효부난다」, 「엄마다리」, 「개똥밥과 효부」, 「의적 강목」 이야기가 유명한다.
집현면에서는 「돌 장석(이정표)」, 「참다운 부부애」, 「광진교와 피리장수」, 「장재못」, 「대홍수와 장대산」, 「말무덤과 선비」, 「장자못과 최부자」, 「용디미와 빈대」, 「집현호랑이」, 「기러기 마을」, 「정자나무의 3년상」, 「봉황과 심술궂은 할머니」, 「굴바위」, 「오모 다리와 삼 형제」, 「숯고개와 삼천갑자 동방삭」, 「장대산과 봉황골」, 「베틀바위와 산적」, 「효자 황기원과 호랑이」, 「집현산」이 전한다.
이 가운데 「눈뜬 청맹 정온」은 고려 후기 충신 정온(鄭溫: 1324~1402)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정온은 벼슬이 대사헌까지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굳게 지키며 사봉면 사곡리에 은거하고 있었다. 조선 태조가 칙사를 보내 정온을 부르려 하자, 그는 눈이 어두워 조정에 나아갈 수 없다며 사양하였다. 이를 의심한 칙사가 솔잎으로 그의 눈을 찔러 보았으나, 정온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묵묵히 견뎠고, 결국 칙사는 그를 데려가지 못한 채 돌아갔다. 이 일화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눈뜬 소경 정온 선생’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진주 지역은 예로부터 남강을 낀 진주분지의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 농업이 발달하였다. 이러한 지역적 배경에 따라 반촌(班村)이 많았으며, 유교적 윤리와 가족 중심의 공동체 문화를 반영하듯 농업 기능요뿐 아니라 효와 가족 간 정의를 노래한 민요가 다채롭게 전승되고 있다. 대표적인 농업 노동요로 「모심기노래」, 「보리타작노래」, 「논매기노래」, 「밭매기노래」 등이 있으며, 길쌈노래로는 「물레노래」, 「삼삼기노래」, 「베틀노래」가 있다. 가족 간의 정의를 표현한 민요로는 「부모노래」, 「장모타령」, 「사위노래」, 「회갑권주가」 등이 전해지고, 육욕적인 사랑을 노래한 「어랑타령」과 여성의 삶을 담은 「시집살이노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달풀이」 등도 전승되고 있다.
2023년 12월 기준, 진주시의 용도지역 면적은 주거지역 19.28㎢[6.99%], 공업지역 6.45㎢[2.34%], 상업지역 3.24㎢[1.17%]이며, 도시계획구역 면적에 대한 점유비는 10.5%에 달한다. 시가지 내 생산녹지 및 자연녹지를 포함하여 녹지지역으로 구분되는 잔여 지역은 246.896㎢[89.50%]로서 대부분이 농경지 및 임야 등 농업 활동에 이용되는 토지에 속한다. 본래 진주시 면적은 69.56㎢에 불과하였으나, 1995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이전에 진양군에 속했던 광범위한 농촌 배후지가 시로 편입되며 도농병진(都農竝進)의 도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진주 지역은 도농 복합시로 농업의 비중이 여타 도시보다 높은 편이며, 비옥한 토질과 알맞은 기후, 앞선 영농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시설원예를 도입한 농업기술 도시이기도 하다. 주요 농업 특산물로는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진주배와 단감을 비롯해 오이, 딸기, 고추, 수박, 피망, 파프리카, 호박 등 다양한 원예작물이 있으며, 이들 품목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지로 대량 수출되고 있다
2022년 12월 기준 총 경지면적은 121.48㎢이며, 이 중 논이 44.81㎢, 밭이 76.67㎢로 밭농사 면적이 더 넓지만, 남강 유역 평야와 남강댐 하류 지역의 양호한 관개 조건 덕분에 논농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농가는 1만 2383가구, 2만 8057명으로 농가 인구율은 약 8.05%에 해당한다.
총사업체 수는 4만 2511개, 종사자 수는 15만 3062명이다. 산업구조를 종사자 수 기준으로 보면, 1차산업 [농업 · 임업 · 어업 · 광업]이 0.5%[761명], 2차산업 [제조업 · 공급업 · 건설업 등]이 21.1%[3만 2286명], 3차산업은 78.4%로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나타낸다. 3차산업 분야의 고용이 2차산업에 비해 약 3배에 달하는데, 이는 서부 경상남도 지역의 거점도시로서 진주시가 수행하는 중심지 기능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3차산업에서는 도매 · 소매업[13.6%], 숙박 · 음식점업[10.4%], 교육 서비스업[9.3%]이 두드러진다. 이는 진주시가 서부 경상남도의 상권 중심지이자 교육 · 문화 도시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지표로, 1차산업과 2차산업에 비해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지역 여건과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근에는 관광 · 물류 · 유통 등 고부가가치 산업과 생명공학 · 우주항공기술산업 등 연구 중심 도시로 산업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며, 실크와 농산물 가공산업을 지역특화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시장은 2024년 1월 기준 전통시장 및 상점가 14곳이 있으며, 전통시장[5일장]은 4곳이 있다. 대규모 점포는 백화점, 아웃렛, 대형마트 등을 포함하여 총 9곳이 있다.
지금의 충무공동은 국토교통부 주도로 조성된 경남혁신도시를 기반으로 형성된 지역이다. 경남혁신도시의 면적은 약 409만 3000㎡[124만 평]이며, 3만 7767명[1만 3902가구]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으며, 2007년 3월 19일에 사업이 시작되어 2015년 12월 31일에 완료되었다.
진주시의 국가산업단지로는 경남항공진주지구국가산업단지가 있다.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 대축리 · 화개리 일원에 있으며, 약 83만㎡ 내외 규모로 2017년부터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조성되었다. 일반산업단지로는 진주사봉일반산업단지, 정촌일반산업단지, 진주상평일반산업단지, 지수일반산업단지, 가산일반산업단지, 뿌리일반산업단지가 있으며, 농공단지에는 대곡농공단지, 진성농공단지, 사봉농공단지, 이반성농공단지, 실크전문농공단지, 생물산업전문농공단지가 있다.
관내에 남해고속도로와 통영대전고속도로가 통과하며, 국도는 국도 2호선, 국도 3호선, 국도 33호선이 지나간다. 인근에 김해국제공항과 사천공항이 있다. 경전선 철도가 복선화되면서 2012년 12월 한국고속철도[KTX]가 개통하였고, 2023년 9월부터 수서행 SRT가 운행하고 있다. 2019년 1월 29일 정부 재정 사업으로 확정된 김천-진주-거제 간 남부내륙고속철도[서부경남KTX]가 2030년 개통되면 진주시는 수도권 [서울특별시, 경기도] 및 대전광역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등의 대도시와 1~2시간 이내 연결되면서 생활권이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진주시는 남강을 끼고 임진왜란 유적들이 산재하여 이와 관련한 관광산업이 발달하였다. 남강 변 절벽 위의 진주 촉석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고려 공민왕(恭愍王: 1330~1374) 때 창건하여 600여 년 동안 유지되다가 한국전쟁 때 불탄 것을 재건하였다. 이곳에서 바라다보이는 남강 변의 경치가 절경이다. 전시에는 장군이 지휘하는 장소로, 평소에는 관리들의 놀이터로 쓰였다고 한다. 그 밑의 절벽을 따라 남강에 이르면 2m 크기의 진주 의암(晋州 義巖)[경상남도 기념물, 2001년 지정]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 바위에서 의기(義妓) 논개(論介: ?~1593)가 왜장의 목을 껴안고 남강으로 투신하였다.
남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김시민을 비롯한 수많은 군졸들의 신위를 모신 진주 창렬사, 승군이 왜적의 침입에 맞서며 머물렀던 호국사가 있다. 시의 남서쪽 약 20㎞ 지점에 남강 상류를 막아 만든 인공호인 진양호는 진주 대표 관광지로, 둘레길과 물빛, 석양 관광을 할 수 있다.
그 밖에 진주성 북장대와 진주성 서장대는 전란 때 장군이 군을 지휘하던 곳이고, 논개의 혼을 모셔 놓은 진주 의기사, 진주 유림의 고향인 진주향교, 봉이 날아가 버렸다는 데서 이름 지은 비봉산의 경치는 진주의 명물이다. 판문동 · 귀곡동에 있는 진양호반의 진양호공원과 가좌동의 석류공원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남성동과 인사동 일대에 형성된 인사동 골동품거리는 고미술품과 민속품을 포함한 문화유산 관련 물품을 취급하는 업소들이 밀집한 거리로, 약 10여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되어 온 민속 시장 거리이다.
남가람문화거리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범 문화예술거리로 지정되어,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단계[문화예술의 거리]와 2단계[역사의 거리]로 나뉘어 조성하였다. 죽림을 복원하고 야외공연장과 조형물, 광장 등 다양한 문화 시설을 갖춘 공간으로, 진주시의 문화와 예술을 상징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신안동의 진주공설운동장을 비롯하여 문산읍의 진주스포츠파크, 옥봉동의 남강실내아이스링크, 상평동의 진주학생수영장 등은 대표적인 체육시설이다. 이 외에도 진성면 상촌리에 진주컨트리클럽이 있으며 망진산 체육공원과 비봉산 체육공원 등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진주시는 2019년 10월,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서 ‘공예 및 민속예술’ 분야 창의도시로 선정되었다. 이에 2021년에는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를 개최하여 세계 창의도시들과의 교류 기반을 마련하고, 우리의 전통공예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024년 5월에는 ‘2024 공예 및 민속예술 창의도시 서브네트워크 연례회의’에서 의장도시로 선정되었다.
진주시의 행정구역은 1개 읍, 15개 면, 14개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1개 읍은 문산읍이며, 면은 내동면, 정촌면, 금곡면, 진성면, 일반성면, 이반성면, 사봉면, 지수면, 대곡면, 금산면, 집현면, 미천면, 명석면, 대평면, 수곡면 등 15개이다. 행정동은 천전동, 성북동, 중앙동, 상봉동, 상대동, 하대동, 상평동, 초장동, 평거동, 신안동, 이현동, 판문동, 가호동, 충무공동의 14개이다.
진주시의 남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7,593명이다. 문산읍 사무소는 삼곡리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진주의 관문으로 찰방(察訪)이 주둔하여 아전 계층 중심의 문화가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는 공장이 많이 입지해 있으며, 기계공업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달하였다. 또한 바이오전문단지와 실크전문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약 20%를 차지하며, 과수원이 널리 분포한다. 양송이 생산량이 군 전체의 61%를 차지하고 있으며, 군내 최대 규모의 가축 시장이 이곳에서 열린다.
진주시의 남부 끝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2,034명이다. 금곡면 사무소가 두문리에 있다.
농경지가 총면적의 21.9%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고구마 등이고 양송이 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얼마 전까지도 시설채소로 호박, 오이, 수박을 비롯해 배, 단감, 밤 등의 과수 재배가 활발하여 농가 소득의 주를 이루었으나, 2024년 기준으로는 깻잎, 오이, 토마토, 딸기, 신선채소 등 유기농 농산물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한우 사육도 활발하며, 두문리에는 금곡가축시장이 있다.
중부고속도로의 일부인 대전-충무 간 고속도로가 2005년에 개통되면서, 연화산도립공원[옥천사(玉泉寺)]과 금곡면을 접하는 나들목이 면사무소에서 약 1㎞ 지점에 설치되었다. 이로 인해 서울특별시까지 4시간대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고, 물류 수송이 원활해져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진주시의 중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만 9983명이다. 금산면 사무소가 장사리에 있다. 최근 주거지역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어 인구가 급격히 증가되고 있다.
용아리에는 축조 연대가 오래된 금호지가 있다. 경지가 총면적의 21.9%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콩 등이고 양송이 재배도 활발하다. 비닐하우스에서 오이, 호박, 고추, 참외, 토마토, 딸기 등의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진주시의 남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3,921명이다. 내동면 사무소가 독산리에 있다. 인공호인 진양호가 축조되며 내평리 등 많은 동리가 수몰되었고, 유수리 쪽으로는 방수로가 설치되어 있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약 22%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로 쌀, 보리, 콩, 마늘 등이 있다. 특히 근교농업이 발달해 오이 등 각종 채소류의 시설재배가 활발하다.
진주시의 북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2,903명이다. 대곡면 사무소가 광석리에 있다. 이 지역은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곡천(大谷川)이 남북으로 흐르고 남서쪽에서 시작한 남강이 동북 방향으로 휘돌아 흐르는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약 27%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로 쌀, 보리, 콩 등이 있다. 남강을 이용한 관개시설 덕분에 시설원예 재배의 적지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양잠업이 성행하여 뽕밭이 널리 분포하였으며, 최근에는 와룡리를 중심으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시설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진주시 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967명이다. 대평면 사무소가 대평리에 있다. 이 면의 중앙을 남강이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진양호가 축조되며 많은 지역이 수몰되었으며, 대평리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약 5.6%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등 식량작물이다. 신풍리에서 나는 대평무가 육질이 치밀하고 맛이 독특하여 예로부터 유명했으나, 저장상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진주시의 서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3,750명이다. 명석면 사무소가 관지리에 있다. 대체로 산지가 많으며, 나불천(羅佛川)이 남북으로 관류하여 남강으로 흐른다. 그 밖에도 작은 하천들이 많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13.1%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콩 등이며, 양잠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진주시의 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485명이다. 미천면 사무소가 오방리에 있다.
전체 면적의 약 77%가 임야로, 12.20㎢ 면적에 밤나무를 식재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농경지는 총면적의 약 16%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콩 등이다. 양잠업이 활발하여 뽕나무가 많다. 특산물로 양송이가 재배되며 안간리에 가축 시장이 열린다.
진주시의 중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387명이다. 사봉면 사무소가 사곡리에 있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약 32%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콩, 고구마 등이다. 한편, 진주사봉일반산업단지와 사봉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농업뿐 아니라 제조업 기반도 함께 갖춘 지역이다.
진주시의 서부 끝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2,096명이다. 수곡면 사무소가 대천리에 있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23.8%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고구마 등이다. 양잠업이 발달하여 군내 최대의 뽕밭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돗자리의 재료로 쓰이는 주3를 재배하여 농가 소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진주시의 동부 끝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488명이다. 이반성면 사무소가 용암리에 있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약 18.4%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콩, 고구마 등이다. 특산물로 양송이 재배가 활발하다. 전형적인 미 · 맥 위주의 농업구조이나 사이버타운을 운영하며 농촌 정보화 사업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길성리 수성에 이반성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진주시의 동남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2,370명이다. 일반성면 사무소가 창촌리에 있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약 26%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콩, 마늘 등이고, 양송이도 많이 재배한다. 남쪽 산지에서 축산도 활발하여 닭과 돼지 사육 두수가 시역 내 최고이다. 창촌리에서 가축 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반성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진주시의 남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8,722명이다. 정촌면 사무소가 화개리에 있다. 2010년대 말 도시계획에 따라 신도심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이에 따라 2015년 당시 3,158명이던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약 24%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무, 배추, 소채 등이다. 특산물로 양송이 재배가 활발하고, 근교농업이 발달하여 오이, 고추, 참외, 딸기, 배, 단감, 수박 등이 재배된다. 171만 2000㎡의 정촌일반산업단지와 함께 모다아울렛 진주점 등 대단위 의류 유통시설이 들어서 있다.
진주시의 북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334명이다. 지수면 사무소가 승산리에 있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약 31%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콩, 양파 등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시설작물도 재배한다. 또한 마와 우엉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진주시의 중남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767명이다. 진성면 사무소가 상촌리에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콩 등이고, 양송이도 많이 재배된다. 산간 경사지에 목장이 있다.
진주시의 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4,377명이다. 집현면 사무소가 봉강리에 있다. 전체적으로 산지가 많은 지형으로 북쪽에 집현산(集賢山: 578.1m)이 있으며, 중앙에 약간의 평지가 발달하였다.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약 21%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로 쌀, 보리, 고구마 등이 있다. 최근에는 비닐하우스 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시설채소의 주산지로 자리 잡아 오이, 호박, 고추, 참외, 토마토, 딸기 등이 다량 생산된다. 이 밖에도 양송이와 산딸기 등이 재배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2만 6886명이다. 천전동 행정복지센터가 망경동에 있다. 2013년 5월 1일 자로 천전지구 4개 법정동[망경동, 강남동, 주약동, 칠암동]을 관할하기 위하여 행정동인 천전동이 설치되었다. 망진산을 중심으로 일반 주거지역, 자연마을, 아파트 단지가 혼합된 도농 복합형 지역이다.
진주교와 천수교를 잇는 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의 교통 요충지이며, 진주 망진산 봉수대와 경남문화예술회관, 야외공연장 등 시민의 문화, 휴식 공간이 있으며, 학교, 병원 등 다수의 공공기관이 소재한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9,604명이다. 성북동 행정복지센터가 봉곡동에 있다. 남강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지 중 하나인 진주성이 본성동에 있다.
2013년 5월 1일, 행정동인 성지동과 봉안동을 통합하여 성북동으로 개편하고, 본성동과 남성동, 인사동, 중안동, 계동, 봉곡동 등 6개 법정동을 관할하도록 하였다. 성북동은 진주시 서부 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며 유동 인구가 많고, 공공기관을 비롯해 전통시장, 대형 상가, 숙박 시설 등이 밀집해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만 243명이다. 진주시 도심 중앙에 위치한 동으로, 중앙동 행정복지센터가 동성동에 있다.
2013년 5월 1일 행정동인 중앙동, 봉수동, 옥봉동을 통합하여 중앙동으로 하였다. 진주중앙시장, 진주논개시장, 진주중앙지하도상가[에나몰], 금융기관, 의료시설 등이 밀집한 중심 상업지구이다. 매년 10월 축제가 열리는 시기에는 남강 변과 녹지 둔치, 선학산, 봉황교, 비봉산 등 주변의 자연환경이 문화관광 자원으로 조명되며, 평소에는 시민들의 체력 증진과 휴식 공간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만 2889명이다. 상봉동 행정복지센터가 상봉동에 있다. 도농 복합형 주거 안정 지역으로 2013년 5월 1일 행정동인 상봉동과 서동을 통합하여 상봉동으로 개편하였다.
관내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봉원초등학교, 봉원중학교, 진주중학교, [진주고등학교, 진주여자고등학교, 경진고등학교, 진주보건대학교 등]가 자리 잡고 있으며, 비봉산과 서봉지(棲鳳池), 봉란대(鳳卵臺)와 같이 봉황을 상징하는 자연 지형과 전승 설화, 문화유산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만 8241명이다. 상대동 행정복지센터가 상대동에 있다. 진주시청, 각급 금융기관 등의 관공서가 즐비한 진주시의 중심 지역이다. 시청사 바로 옆에 전통시장인 자유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서쪽은 남강을 접하고, 북쪽은 선학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기슭에 진주시립연암도서관, 모덕체육공원, 진주시장애인문화체육센터 등이 있으며, 동쪽으로 녹지공원과 진주시민자전거안전교육장 등을 갖추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2만 2809명이다. 하대동 행정복지센터가 하대동에 있다. 남강과 선학산을 끼고 있는 주거지역으로 공동주택과 단독주택, 상가 등이 혼재되어 있다.
도시기반시설이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으며, 간선도로를 따라 상가 등 근린생활시설이 발달해 있다. 또한 교육기관이 다수 위치해 있어 학생들의 교육여건이 양호한 지역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만 670명이다. 상평동 행정복지센터가 상평동에 있다. 주거지역, 공업지역, 준공업지역으로 혼합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진주상평일반산업단지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1970년대에 ‘지방공업 개발장려지구’로 지정되어 조성된 것으로, 현재 400여 개 제조업체가 입주해 있다.
최근 도심형 첨단산업단지로 재편하기 위하여 스마트융복합혁신센터 건립 사업과 노후 공공청사 리뉴얼 사업을 추진하고 산단과 주변 지역을 대상으로 도시재생뉴딜사업을 발굴, 진행 중이다. 또한 실크 산업의 중심지로,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2만 5746명이다. 초장동 행정복지센터가 초전동에 있다. 도농 복합형 지역이며 도시개발 지역 및 신흥 개발 지역이다. 남강 둔치와 초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경상남도청 서부청사, 진주실내체육관, 진주실내수영장, 진주시농산물도매시장이 있으며 초 · 중 · 고등학교 등 각종 교육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2만 5688명이다. 평거동 행정복지센터가 평거동에 있다. 택지개발에 따라 상업, 주거, 녹지가 복합된 신흥 주거지역으로 조성되었다. 남강 둔치, 녹지대, 석갑산(石甲山: 170m) 등산로 등이 있어 정주 여건이 우수하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만 1032명이다. 신안동 행정복지센터가 신안동에 있다. 신흥 택지개발 지역으로 남강 둔치와 신안녹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진주교육대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과 의료시설, 금융기관 등 다양한 생활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1만 12명이다. 이현동 행정복지센터가 이현동에 있다. 2개의 법정동[이현동, 유곡동]을 관할하고 있다. 나불천을 중심으로 형성, 발전하였으며, 도시와 농촌 경관이 혼재되어 있다. 진주시립서부도서관이 자리하고, 숙호산 체육공원, 숙호산 등산로가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2만 229명이다. 판문동 행정복지센터가 평거동에 있다. 도농 복합 지역이다.
남강댐으로 조성된 진양호를 중심으로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다. 진양호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진양호 둘레길 등 시민 휴식 공간을 비롯해, 진양호우드랜드, 진주민속소힘겨루기경기장, 꿈키움동산 어린이농촌테마체험관 등 다양한 관광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3만 4734명이다. 가호동 행정복지센터가 가좌동에 있다.
도농 복합 지역으로, 경상국립대학교와 연암공과대학교를 비롯해 경남정보고등학교, 경상국립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와 경상국립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개양중학교, 정촌초등학교, 가좌초등학교, 은하수초등학교 등 다양한 교육기관이 소재하고 있다. 또한 가호 택지 조성, 진주역 이전 및 역세권 개발, 종합교통센터 추진, 혁신도시 건설 등 도시개발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3만 3825명이다. 충무공동 행정복지센터가 충무공동에 있다. ‘충무공동’이라는 지명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대첩을 지휘한 진주목사 김시민의 시호(諡號)인 ‘충무공(忠武公)’에서 따왔다.
이 지역은 수도권 중심의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 고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경남혁신도시로 조성된 곳이다. 2011년 7월 29일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를 비롯한 11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계획이 승인되었고, 2013년 1월 28일에는 중앙관세분석소가 가장 먼저 업무를 개시하는 등 점차 혁신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후 「진주시 읍 · 면 · 동 · 리 명칭 및 구역 획정에 관한 조례」에 따라 2013년 12월 18일 자로 법정동이자 행정동인 ‘충무공동’이 신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