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검기무(劍器舞) 또는 검무로 일컬어온 정재(呈才)의 한가지이다. 조선 중기 이후로 계속 연행되어왔으며, 그 무보(舞譜)는 조선 말기의 『각정재무도홀기(各呈才舞圖笏記)』에서 전해진다.
진주검무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던 사람 중에는 김자진(金子眞, 예명 彩玉, 1903년생) · 김옥주(金玉珠, 예명 貞子, 1904년생) · 강귀례(姜貴禮, 1906년생) 등이 가장 연령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연령으로 보아 한말 궁중진연(宮中進宴) 등에는 참여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1910년 전후 교방(敎坊)에서 검무를 배운 것으로 보인다.
진주검무는 1967년 1월 16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검무는 국립국악원을 비롯해 서울지방에서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연행되어온 궁중정재 중의 하나로, 진주검무는 나름의 특징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검무의 원형은 충무북춤(舞鼓, 일명 勝戰舞)과 함께 고종 때의 『정재무도홀기』와 국립국악원에 전하는 사위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