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10월 허만정(許萬正) 등 지방 유지 10명이 일신재단(一新財團)을 조직하여 이듬해 4월, 4년제의 사립 진주일신여자고등학교(晋州一新女子高等學校)로 설립하였다.
당시 허만정은 나라의 독립을 이루기 위한 길은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임을 절감하여 아버지 허준(許駿)의 도움으로 학교설립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뜻이 부근에 널리 알려지고 교육구국의 여론을 환기시키게 되어, 1920년 3월사립일신고등보통학교기성회를 조직하고 고문에 허준·김기태(金琦邰), 회장에 박재만(朴在萬), 부회장에 강위수(姜謂秀) 등 이사 15명과 평의원 30명으로 발족하였다. 설립 당시 60명의 학생이 입학하여 1929년 3월 제1회 졸업생 19명을 배출하였다.
1938년 4월에는 진주의 주산(主山)인 비봉산(飛鳳山)의 이름을 따서 봉산고등여학교(鳳山高等女學校)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평소 민족교육재단운영의 교육을 탄압해온 일제는 1939년에 개정된 「조선교육령」을 빙자, 진주공립고등여학교 설립을 서둘러 일신재단과 봉산여학교를 공립으로 반납하라는 압력을 가하였다.
이에 따라 진주공립고등여학교로 강제개편되어 처음으로 일본인 교장이 취임하였다. 광복 후 1946년 9월 6년제 18학급의 진주공립여자중학교로 개편되었다. 1951년 8월에는 학제변경에 따라 진주여자중학교와 분리, 진주여자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개교 당시의 교훈은 ‘극충극효(克忠克孝)·온아정숙(溫雅貞淑)·감사보은(感謝報恩)·협동친화(協同親和)·근로호애(勤勞好愛)’였으며, 이후 ‘힘써 공부하고 서로 도우며 나라를 사랑하는 여성이 되자’로 변경한 뒤, 2019년 '나날이 새롭게 하여 세상을 품는 인재가 되자'로 다시 교훈을 변경하였다.
1978년에 창단된 교기(校技) 연식정구부는 1981년 대통령기쟁탈전국연식정구대회에서 우승하였으며, 한일교환경기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였다. 수영부는 1984년 아산기쟁탈전국수영대회 및 전국수영대회에서 우승한 바 있다. 1982년에는 문교부지정 불어과연구학교를 운영하였으며, 1995년 4월에는 개교 70주년기념 제4회 동문체육대회를 개최하였다.
2008년 6월에는 급식소 봉산관을 신축하였으며 2009년 2월에는 효주기념관을 리모델링하여 완공하였으며 2009년 3월에는 최경이 교장이 부임하였다. 2010년 6월에는 수학, 과학 교과교실(6실)을 완공하였다.
2010년 2월에는 제81회 졸업식을 거행하여 졸업생 385명을 배출하였다. 총졸업생수는2만 6,323명이다.
학급별 합창제, 동아리 발표회, 연극발표를 통한 의사소통 기능 신장, 개인특기 발표를 실시한다.
건강한 생활습관 형성, 좋은 책 읽기를 통한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배양, 의사소통 중심의 외국어 교육 강화, 정보생산과 활용능력 향상 이 네 가지가 모두 중점 교육사항이다.
교화는 목련, 교목은 소나무이다.
1학년 10개 학급 322명, 2학년 10개 학급 336명, 3학년 12개 학급 416명으로 총 32개 학급 1,084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교장 1명, 교감 1명, 사서교사 및 보건교사 각각 1명, 교사 64명, 직원11명 등 총 79명의 교직원이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