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후백제의 제2대(재위: 935년~936년) 왕.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고려태조는 유금필·만세(萬歲) 등에게 바닷길로 가서 위로하고 데려오게 해 후한 예로 대우했으며, 견훤이 자기보다 나이가 10년 위라 해 높여 상보(尙父)를 삼고 남궁(南宮)에 거처하게 하였다. 그리고 양주(楊州)를 주어 식읍(食邑)을 삼게 하였다. 이러한 내분을 틈타 고려태조는 4만 3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천안부(天安府)에 이르러 진용을 정돈한 다음 일선군(一善郡 :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으로 진격하였다. 이에 후백제의 신검이 대군을 이끌고 북상해 마침내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대진했으나 패배해 왕위에 오른 지 1년 반 만에 멸망하였다.
기록에는 능환은 신하로서의 의리를 저버렸다 해 주살(誅殺)당했고, 신검에게는 작(爵)을 내렸으며, 양검과 용검만이 유배되어 살해되었다고 되어 있으나 신검도 함께 살해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 하면 신검이 당시 살아 있다가 뒤에 죽었다면 그 사망 기사가 따로 나올 법한데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후백제의 국운이 기울어지자 견훤이 고려에 대해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려 하자, 신검 등은 고려에 대해 강경책을 견지하려고 한 데서 비롯된 내분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왕조(高麗王朝)의 성립(成立)과 호족연합정권(豪族聯合政權)」(하현강, 『한국사』 4, 국사편찬위원회, 1977)
- 「후삼국(後三國)의 성립(成立)」(박한설,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76)
- 「후백제(後百濟) 금강(金剛)에 관하여」(박한설, 『대구사학』 7·8합집,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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