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의 시조 견훤(甄萱)의 넷째아들이다. 금강은 체구가 매우 크고 지략이 많아 견훤이 특히 사랑하여, 자기의 왕위를 계승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그의 형들인 신검(神劍)·양검(良劍)·용검(龍劍) 등이 이를 시기하게 되었고, 마침내 935년 3월 이찬(伊飡) 능환(能奐)이 강주(康州: 지금의 晉州)의 도독(都督) 양검과 무주(武州: 지금의 光州)의 도독 용검 등을 사주하였다.
양검·용검 등은 맏형인 신검을 부추겨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유폐시키고, 금강을 살해한 뒤 신검이 즉위하게 되었다. 한편, ‘금강’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첫째, 불경의 하나인 『금강경(金剛經)』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설이다.
그것은 견훤이 한때 불교사원에서 기거하였던 사실과, 921년에 동리산파(桐裏山派)의 경보(慶甫)가 귀국하자 왕사의 예로 접대하려 하였던 사실에 근거를 둔 것으로, 아마 선종(禪宗) 계통의 불교와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둘째, 견훤의 맏아들인 신검의 다른 표기로서, 신검과 동일인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그러나 아직 정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