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왕자(王滋). 충렬왕의 맏아들이다.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의 아버지이며, 충선왕의 이복형이다.
1279년(충렬왕 5) 충청도 아주(牙州)동심사(東深寺)에 보내어져, 세자(世子: 뒤의 충선왕)와의 충돌을 피하게 하였다. 1283년 소환되어 강양공에 봉해졌다. 『고려사(高麗史)』의 이인임(李仁任) 열전에 강양군(江陽君)으로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보아, 군(君)에 봉해지기도 한 것 같다.
어머니 정신부주(貞信府主)가 신종(神宗)의 손자인 시안공(始安公)의 딸이므로, 원나라의 왕실과 국혼이 시작되기 이전의 전통적인 고려사회에서라면, 당연히 태자로 책봉되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당시는 원나라출신 공주의 소생을 중시하였고, 정신부주가 고려 종실인 시안공 왕인의 딸이었으므로 강양군은 왕위계승에서 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