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년(목종 12)에 강조(康兆)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옹립하려 할 때 서경분사감찰(西京分司監察)로서 황보유의(皇甫兪義)와 함께 신혈사(神穴寺)에 가서 현종을 모셔왔다.
1011년(현종 2) 거란병이 개성에 침입, 현종이 남하할 때 광주(廣州)에 이르니 하공진(河拱辰) 등이 적에게 잡혔다는 거짓 소식이 전하여졌다.
이에 호종하던 여러 신하가 흩어져 달아났으나 채충순(蔡忠順)·장연우(張延祐)·주저(周佇)·유종(柳宗) 등과 함께 왕을 끝까지 시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