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년(현종 16)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고, 1033년(덕종 2)에 예빈경지중추원사(禮賓卿知中樞院事)를 거쳐서 이듬해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되었다.
1035년(정종 1)에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옮겼다가 이듬해 지중추원사 병부상서로 죽었다. 덕종 즉위 이후 왕가도, 서눌, 유소 등이 거란에 대해 외교를 단절하고, 성을 공략하자는 강경책 사용 건의에 대하여, 이를 반대하는 유화책을 주장하였다. 시호는 공정(恭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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