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남학교수, 실록청낭관, 지제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정언 · 수찬을 역임하였으며,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소론의 이진검(李眞儉) · 이진유(李眞儒) 등이 호조참판인 형 김운택(金雲澤)을 논핵하자 형의 용서를 청하는 소를 올리고 수찬 · 교리 · 남학교수(南學敎授)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으며, 그 뒤 실록청낭관 · 지제교(知製敎)를 역임하였다.
1721년(경종 1)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4대신(老論四大臣)이 절도(絶島)에 안치되고, 다음 해 경종을 시해하려 모의하였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 명단에 끼어 선천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하옥되어 옥사하였다.
1741년(영조 17) 관작이 회복되었으며, 김제겸(金濟謙) · 조성복(趙聖復)과 함께 신임사화 때 죽은 삼학사(三學士)로 일컬어진다. 저서로는 『죽헌집(竹軒集)』이 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죽헌집(竹軒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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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임오식년사마방목(壬午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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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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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옥사의 내용 : 『경종수정실록』 3권, 1722년(경종 2) 12월 3일. "원임 부제학 김운택의 옥중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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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김민택 저술 : 『죽헌집(竹軒集)』 (국립중앙도서관 일산古3648-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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