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대사헌, 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1년 보덕, 1707년 헌납 · 장령을 역임하고 그해 사은 겸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11년 집의가 된 뒤 동부승지 · 의주부윤을 역임했으며, 1717년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1719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우도균전사(右道均田使)를 겸했다. 1720년(경종 즉위년) 평안도관찰사,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으며, 이어서 형조참판 · 강화유수 ·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725년(영조 1) 한성부우윤이 되었으며, 그해 사은 겸 주청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공조판서 · 좌참찬을 역임했다. 이듬해 형조판서가 된 뒤 호조판서 · 한성부판윤을 지냈으며,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호서안무사가 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이곳의 관찰사를 지낸 권업이 도내 사정을 잘 안다고 해 다시 충청도관찰사에 제수되었다.
1730년 다시 한성판윤이 되고, 이어 예조판서 · 지돈녕을 거쳐 1734년 다시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고향으로 무단 퇴거해 부임하지 않아 상주에 부처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대사헌이 되었으며, 이어서 좌참찬 · 우참찬을 역임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회헌집(悔軒集)』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세포 관련 상소 : 『숙종실록』 33권, 1699년(숙종 25) 11월 13일. "세포의 징수·전세의 양감·과장의 일에 대한 지평 권업의 상소"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