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충청도수사, 충청병사, 평안병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당시 병권을 잡고 있던 김석주(金錫胄)와 신여철(申汝哲)의 추천을 받아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되었고, 그 뒤 여러 지방의 무관직을 역임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1714년(숙종 40) 충청도수사로 있을 때 배를 만들 목재와 군졸 관리를 소홀히 하였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724년(경종 4) 충청병사에 임명되었으나, 소론인 장령 이이제(李以濟)의 배척을 받아 부임도 하기 전에 해직되었는데, 노론에 속한 무장이었기 때문이다.
1725년 영조 즉위 후 노론이 득세하자 평안병사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뒤에 파직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등이 충청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향리에서 변을 듣고 창황히 서울로 달려가 왕을 호위하였다. 이 때의 충정으로 죽은 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도곡집(陶谷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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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간원의 탄핵 : 숙종실록55권, 1714년(숙종 40) 7월 16일. "정언 안정 등이 충청 병사 구봉창과 박치원·정수기 등을 탄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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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평안병사 임명 : 영조실록6권, 1725년(영조 1) 5월 6일. "서종섭·이중협·이재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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