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7년(의종 1)에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시험을 관장하였다. 1150년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되었고, 이듬해 간관으로서 대궐에 엎드려 시국에 관한 일을 3일 동안이나 간언하였으나, 회답이 없으므로 처벌해주기를 요청하고 집무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왕이 불러 위로하고 타이르며 다시 일을 볼 것을 명하였으나 명령을 받들지 않고 물러나왔다. 1152년에는 예부상서에 올랐다. 성격이 굳세고 바른말을 잘하기로 이름이 났으며, 왕이 금주할 것을 권고할 정도로 술을 잘하였고, 문장에도 능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