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18명에게 선무공신을 책봉하였는데,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晋州大捷)에서 큰 공을 세워 선무2등공신에 책봉된 김시민에게 내린 교서이다. 2006년 12월 29일 보물로 지정되어, 경상남도 진주시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교서는 처음 종가에서 보관하여 오다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유출되어 잊혀져 있었는데, 문화재(현, 국가유산) 환수운동을 통하여 성금을 모아 구입하여 2006년에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원래 선조가 책봉할 당시 발급된 선무공신교서는 18점이었는데, 현재 국내에 남아서 전해지는 것은 이순신 선무공신교서(1등공신. 보물, 2008년 지정), 원균 선무공신교서(1등공신. 보물, 1992년 지정), 김시민 선무공신교서(2등공신. 보물, 2006년 지정), 권응수 선무공신교서(2등공신. 보물, 1980년 지정), 이광악 선무공신교서(3등공신. 보물, 1988년 지정), 이운룡 선무공신교서(3등공신. 보물, 1994년 지정), 유사원 선무공신교서(3등공신, 서울대규장각 古4650-161) 등 7점이다.
규격은 세로 38.4㎝, 가로 287㎝의 크기로, 교서의 제목은 「가선대부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겸 진주목사 효충장의협력선무공신 자헌대부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상락군 김시민에게 내리는 교서」이다.
서두에 김시민의 공적과 충의에 대하여 포상함에 공의(公議)에 따라 시행한다고 이르고, 공의 성품과 전공을 세우는 과정을 전공에 대하여 세세히 기록하고, 전투 중에 진중에서 전사함에 안타까이 여기는 마음과 전공에 대하여 2등공신에 책봉하여 벼슬을 더하여 주고, 남은 가족에게도 직위를 더하여 주고 현물을 내려 위로한다고 하였다. 또 교서의 말미에는 1등 이순신 · 권율 · 원균, 2등 신점 · 권응수 · 김시민 · 이정암 · 이억기, 3등 정기원 · 권협 · 유사원 · 고언백 · 이광악 · 조경 · 권준 · 이순신(李純信) · 기효근 · 이운룡 등 18명의 선무공신 책봉 명단을 기록하였다.
이 교서는 김시민 장군의 공적과 그에 따른 포상내역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선무공신교서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임진왜란사 연구와 고문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국민들의 모금을 통해 반환된 최초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