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선무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방어사가 되어 김산(金山)에서 왜적을 물리치다 부상을 입었다. 이 해 겨울 수원부사로 적에게 포위된 독산성(禿山城)의 권율(權慄)을 응원, 이듬해 도원수 권율과 함께 행주산성에서 대첩을 거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되었다.
행주산성에서의 승리로 한양을 탈환할 수 있었고, 도성서도포도대장(都城西都捕盜大將)으로 임명되었다. 1593년『기효신서(紀效新書)』의 신진법(新陣法)을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의 소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새로 편제된 훈련도감당상을 겸하고, 이듬해 훈련대장이 되었다.
그 뒤 동지중추부사·함경북도병사·훈련원도정·한성부판윤을 거쳐 1599년 충청병사·회령부사를 지냈으며,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봉되고 풍양군(豊壤君)에 봉하여졌다.
그는 무신으로 사서(史書)를 두루 통하여 고사(古事)에 밝았고 늦게 급제하였으나 명망이 높아 사람들이 모두 대장의 재목으로 기대하였다. 시호는 장의(莊毅)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포저집(浦渚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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