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에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한문소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東京)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려 있는 5편 중 하나이다.
국내의 것으로는 김집(金集)이 편찬한 한문소설집에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과 더불어 필사된 것이 있다.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그린 애정소설이며, 구조 유형상 명혼소설(冥婚小說) 또는 시애소설(屍愛小說)이라고도 한다.
「만복사저포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라도 남원에 사는 총각 양생(梁生)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의 구석방에서 외로이 지냈다. 배필 없음을 슬퍼하던 중에 부처와 저포놀이를 해 이긴 대가로 아름다운 처녀를 얻었다.
그 처녀는 왜구의 난 중에 부모와 이별하고 정절을 지키며 3년간 궁벽한 곳에 묻혀서 있다가 배필을 구하던 터였다. 둘은 부부관계를 맺고 며칠간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양생은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딸의 대상을 치르러 가는 양반집 행차를 만났다. 여기서 양생은 자기와 사랑을 나눈 여자가 3년 전에 죽은 그 집 딸의 혼령임을 알았다. 여자는 양생과 더불어 부모가 베푼 음식을 먹고 나서 저승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며 사라졌다. 양생은 홀로 귀가했다.
어느날 밤에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은 타국에 가서 남자로 태어났으니 당신도 불도를 닦아 윤회를 벗어나라고 했다. 양생은 여자를 그리워하며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며 지냈다. 그 마친 바를 알 수 없었다.
「만복사저포기」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인을 등장시킴으로써 자주적인 성격을 보여 준다. 그리고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통해 강렬한 삶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죽은 여자는 민간 속신에 나타나는 문자 그대로의 귀신이 아니다. 그것은 역설적인 구조를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작자의 논설에 나타난 사상과 일치한다.
「만복사저포기」의 생인(生人)과 사자(死者)의 사랑은 살아 있는 남녀간의 사랑보다 더욱 강렬한 의지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 의지를 좌절시키려 드는 세계의 횡포를 고발하는 데 더욱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작품의 결말은 비극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도교적인 초월로 보기도 한다. 현실적 · 일원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현실을 깊이 있게 주시하면서 현실이 지닌 문제점을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현실주의적 · 사실주의적 경향을 띤다.
「만복사저포기」에 이르러 한국의 소설문학이 비로소 그 형태를 완전히 갖추게 되었으며, 위에서 언급한 점에서 중요한 문학적 가치와 소설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