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에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한문소설. 목판본. 작자의 단편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과 함께 실려 전한다.
불교를 믿지 않던 경주에 살던 박생(朴生)이 꿈속에서 남염부주(炎浮洲 : 염라국)에 다녀온 후 크게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꿈속에서 겪은 일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몽유구조의 소설로서, 작자의 철학사상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경주에 사는 박생(朴生)은 유학(儒學)으로 대성하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과거에 실패하여 불쾌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뜻이 높고 강직하고 인품이 훌륭하여 주위의 칭찬을 받았다. 그는 귀신 · 무당 · 불교 등의 이단에 빠지지 않으려고 유교경전을 읽고, 세상의 이치는 하나뿐이라는 내용의 철학논문인 「일리론(一理論)」을 쓰면서 자신의 뜻을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
어느날 꿈에 박생은 저승사자에게 인도되어 염부주(炎浮洲)라는 별세계에 이르러 염왕(閻王)과 사상적인 담론을 벌였다. 유교 · 불교 · 미신 · 우주 · 정치 등 다방면에 걸친 문답을 통하여 염왕과 의견일치에 이름으로써, 자신의 지식이 타당한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염왕은 박생의 참된 지식을 칭찬하고 그 능력을 인정하여 왕위를 물려주겠다며 선위문(禪位文)을 내려주고는 세상에 잠시 다녀오라고 하였다.
꿈을 깬 박생은 가사를 정리하고 지내다가 얼마 뒤 병이 들었다. 그는 의원과 무당을 불러 병을 고치지 않고 조용히 죽었다.
작품에 나타난 염부주와 염왕은 작자가 자신의 사상이 타당한 것임을 입증해보이기 위하여 설정한 가상적인 존재이다. 이것을 매개로 하여 그 타당성이 입증된 사상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이다.
첫째는 유교가 불교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유교사상은 주인공의 기본사상이자 작자의 기본입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불교의 미신적 타락상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둘째는 세계에는 현실세계만 존재할 뿐 천당 · 지옥 · 저승 같은 별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세상의 이치도 하나일 뿐이라는 세계관을 주장하고 있다. 즉, 미신적 ·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현실적 ·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는 폭력과 억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에 대하여, 백성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경고하는 정치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남염부주지」는 이같은 사상의 타당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사상에 투철한 유능한 인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릇된 세상을 은연중 비판하고 있다. 작자의 깊은 사상을 집약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나 사상을 밀도짙게 다룬 최초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