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육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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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문헌
1397년 편찬 · 반포된 조선시대 최초의 공적인 법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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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397년 편찬 · 반포된 조선시대 최초의 공적인 법제서.
내용

‘경제원육전(經濟元六典)’ 또는 ‘원육전(元六典)’이라고도 한다. 1397년(태조 6) 12월 26일 공포, 시행되었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부속기관으로서 법령의 정비와 법전 편찬업무를 관장하던 검상조례사(檢詳條例司)에서 영의정 조준(趙浚)의 책임 아래 편찬된 것이다. 1388년(우왕 14)부터 1397년(태조 6)까지의 법령과 장차 시행할 법령을 수집해 분류, 편집하였다.

오늘날 전해오지 않으므로 체재와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 직접, 간접으로 인용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호전·예전·병전·형전·공전의 육전(六典)과 각 전마다 여러 강목(綱目)으로 나누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국 초에 갑자기 편찬된 것이어서 법조문이 추상화·일반화되어 있지 않고 이미 공포된 원문의 형태 그대로 실었다. 따라서 조문의 문장에 이두와 방언이 섞여 있고, 시행 연월일이 붙어 있는 소박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1413년(태종 13) 2월에 수정한 뒤에는 원래의 것을 ‘이두원육전(吏讀元六典)’ 또는 ‘방언육전(方言六典)’이라고 불렀다.

1407년 8월 18일 속육전수찬소(續六典修撰所)를 설치해 하륜(河崙)과 이직(李稷)이 『경제육전』을 검토, 수정하여 1412년 4월『경제육전원집상절(經濟六典元集詳節)』 3권을 완성하였다. 그 뒤 다시 법조문 가운데 중복된 것은 빼고 번잡한 것은 간결하게 고쳤다. 또 문장 중의 이두를 빼고 방언은 문어(文語)로 바꾸어 『경제육전속전』이라 이름을 붙이고 1413년 2월 30일에 공포, 시행하였다. 이를 ‘원육전(元六典)’ 또는 ‘원전(元典)’이라고도 부른다.

『원육전』이 시행된 뒤로도 관리들은 알기 쉽고 익숙한 『경제육전』을 여전히 사용하였다. 이에 1431년(세종 13) 5월 강원도에 있는 『경제육전』의 인쇄 판자를 보수해 다시 인쇄하여 배포, 시행하고 『원육전』을 모두 회수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경제육전』과 『원육전』의 내용은 거의 같은 것이어서 실제로 큰 지장은 없었다.

이들 『경제육전』은 조선 창업군주의 법치주의 이념이 담긴 조종성헌(祖宗成憲: 왕실의 선조 대부터 지켜져 내려온 법)으로서 금석과 같은 절대적 가치가 부여되었으며, 뒤에 『경국대전』의 편찬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태조실록(太祖實錄)』
『정종실록(定宗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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