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률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율령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종9품 관직.
목차
정의
조선시대 율령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종9품 관직.
내용

조선시대에는 특히 형사재판의 경우에 범죄사실에 따라 정확히 율문을 적용함으로써 공평을 기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였으므로 매년 두 차례 형조에서 율관(律官)을 시험에 의하여 선발하여 중앙과 지방의 당해관청에 배속시켜서 법률의 해석과 인용, 적용법조의 확정 등의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는데, 검률은 일종의 기술관이었다.

형조에 2인(뒤에 1인)을 두고 병조·한성부·승정원·사헌부·의금부·규장각·개성부·강화부, 그리고 각 도에 1인씩을 두었는데, 병조·한성부·의금부는 형조에서 파견하였다. 이들 관청은 직접 재판사무 내지 그와 밀접히 관련되는 업무를 관장하며, 조율(照律)은 오로지 검률의 손에 달려 있었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추관지(秋官志)』
집필자
박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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