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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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1품 종친의 부인에게 내린 작호.
이칭
이칭
한국대부인(韓國大夫人), 택주(宅主)
제도/법령·제도
제정 시기
1396년(태조 5)
시행 시기
조선시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군부인(郡夫人)은 조선시대에 1품 종친의 부인에게 내린 작호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1품 종친의 부인은 옹주 혹은 택주로 불리거나 한국대부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성종 대 『경국대전』에 정1품과 종1품의 종친인 군의 부인에게 군부인의 작호를 내리도록 규정하였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1품 종친의 부인에게 내린 작호.
제정 목적

조선시대 종친과 문무관의 적처(嫡妻)는 남편의 품계에 따라 봉작을 받았다. 군부인은 중국 당나라부터 존재하였던 부인의 작호였다. 이후 여러 차례 지칭하는 대상이 변경되었는데, 조선은 성종 대에 『경국대전』에서 정1품과 종1품에 해당하는 종친의 적처에게 내리는 작호로 규정하였다.

1품 종친은 정1품의 현록대부(顯祿大夫), 흥록대부(興祿大夫)와 종1품의 소덕대부(昭德大夫), 가덕대부(嘉德大夫)에 봉작된 인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정1품 군은 국왕의 서자인 왕자군이 해당되며, 종1품 군은 적왕손(嫡王孫), 즉 대군의 적장자(嫡長子)가 해당된다.

군부인은 이들의 적처에게 봉작하는 작호이다. 종친을 예우하면서 그의 부인까지 우대하기 위하여 작호를 규정한 것이다. 다만 남편이 죄를 범하여 직첩이 회수되면 자연히 부인의 봉작 역시 회수되었다.

변천사항

군부인은 중국 당나라의 외명부 제도에서 기인하였다. 당나라는 문무 관원 3품 이상의 모친과 부인을 지칭할 때 군부인이라 하였다. 조선은 1396년(태조 5)에 종친이 아닌 1품 관리의 정실(正室) 부인을 군부인이라 하였다. 1417년(태종 17)에는 내명부외명부의 봉작을 규정하였는데 이때 정1품과 종1품 관원의 부인을 군부인에서 정숙부인(貞淑夫人)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한편, 종친의 부인을 부르는 명칭은 본래 고려시대부터 있었는데 공양왕 때 대군과 군의 부인을 옹주(翁主)라고 하였다. 이 명칭은 그대로 조선 건국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후 대군의 처를 옹주, 군의 처를 택주(宅主)라고 구분하면서 대군과 군의 처 호칭에 변화가 생겼다.

1417년에 내명부와 외명부의 명칭을 변경하면서 군의 부인은 종1품의 아무개 한국대부인(韓國大夫人)으로 불렀다. 이어 1430년(세종 12)에 대소명부(大小命婦)의 봉작을 다시 한 번 규정하였는데 이때 정1품과 종1품의 정실 부인에게는 아무개 군부인(郡夫人)이라 부르게 하여서 종친뿐 아니라 1품 관리의 부인도 다시 군부인으로 부르게 되었다. 1437년(세종 19)에는 종친의 봉작을 다시 지정하면서 봉작에 군읍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개정하였다.

성종 대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규정에서야 군부인이 법제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었다. 이때 군부인은 정1품과 종1품 종친의 부인으로 한정되었다. 대군의 부인은 부부인(府夫人), 문무관 1품의 부인은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구분되었다. 종친으로 정1품과 종1품에 오르게 되면 그 부인까지 영예를 입었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세종실록(世宗實錄)』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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