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남해현령, 통정대부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당시 오랫동안 평화가 계속되자 무비가 소홀하였으므로 왕의 명을 받들어 주와 군의 군비를 두루 점검하였다. 1590년 남해현령(南海縣令)으로 부임하여 전선[戰艦]과 병기를 수리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원균(元均)의 휘하에서 여러 차례 해전에 참가하였다.
그때마다 선봉이 되어 큰 공을 세웠으므로 통정대부가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병으로 현령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적병을 만나 어머니와 함께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추록되고 개백군(皆伯君)에 추봉되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서귀유고(西歸遺稿)』
- 『기묘문무과방목(己卯文武科榜目)』(한국국학진흥원[안동 안동권씨 부정공파(副正公派[權通義]) 종중])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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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무과 급제 : 『기묘문무과방목(己卯文武科榜目)』(한국국학진흥원[안동 안동권씨 부정공파(副正公派[權通義])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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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공신 책록 : 『선조실록』 175권, 1604년(선조 37) 6월 25일. "대대적으로 공신을 봉하니 명칭은 호성 공신, 선무 공신, 청난 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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