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남해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남해 부분
인문지리
지명
경상남도 남서단에 위치한 군.
이칭
이칭
전야산군(轉也山郡), 남해현(南海縣)
지명/행정지명·마을
면적
357.52㎢
인구
3만 9832명[2024년 12월 31일 기준]
행정구역
경상남도 남해군
군청 소재지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
공식 홈페이지
https://www.namhae.go.kr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남해군은 경상남도 남서단에 위치한 군이다. 남해도와 창선도 두 섬으로 이루어졌다. 지역 곳곳에 높은 산지가 많다. 동한 난류의 영향으로 온화한 해양성기후를 보인다. 청동기시대 고인돌이 군내 각지의 해안평야와 창선도에까지 밀도 높게 분포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남해 노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순국하였다. 험준한 산지 지형을 활용한 다랑이 논밭, 긴 해안선의 지형을 활용한 어업이 행해지며, 이를 활용한 관광산업이 활발하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57.52㎢, 인구는 3만 9832명이다. 남해군청은 남해읍 북변리에 있다.

정의
경상남도 남서단에 위치한 군.
개관

경상남도 남서단에 위치한 남해군은 동쪽은 경상남도 통영시, 남쪽은 남해, 서쪽은 전라남도 광양시 · 여수시, 북쪽은 경상남도 하동군 · 사천시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7°48′∼128°51′, 북위 34°04′∼34°56′이다. 동한 난류의 영향을 받아 온화한 해양성기후를 보인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57.52㎢이고, 인구는 3만 9832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남해읍], 9개 면[고현면 · 남면 · 미조면 · 삼동면 · 상주면 · 서면 · 설천면 · 이동면 · 창선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위 행정 단위로 221개 행정리, 79개 법정리가 있다. 남해군청은 남해읍 북변리에 있다.

자연환경

남해군은 남해도창선도(昌善島) 두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남해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또한 조도(鳥島) · 호도(虎島) · 노도(櫓島) 등 유인도(有人島) 3개와 무인도 76개가 있으며, 서북부에는 섬진강 하구에서 형성된 대사주(大砂洲)가 많다. 경상남도 남서단에 위치하여 동쪽은 경상남도 통영시, 남쪽은 대한해협이 있는 남해, 서쪽은 전라남도 광양시 · 여수시, 북쪽은 경상남도 하동군 · 사천시와 접한다.

전체 면적은 357.52㎢로, 남북 간 길이는 약 30㎞, 동서 간 길이는 약 26㎞이다. 망운산(望雲山: 786m), 금산(錦山: 681m), 원산(猿山: 627m) 등 다소 높은 산지는 많으나 하천은 모두 짧고, 평야도 매우 협소한 편이다. 해안은 굴곡이 심하고, 해안선 연장은 302㎞이다

지세는 소백산맥(小白山脈)의 말단부가 경상남도의 거창군 · 산청군 · 함양군 · 하동군을 거쳐 내려와 바다에 함몰했다가 다시 본섬에서 솟아올라 일부의 산악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복은 낮지만 전체 면적의 대부분이 산의 형태로 해안이나 산곡을 따라 형성된 분지에 분포한다. 평야지대는 전체 면적의 약 25%을 차지한다. 군의 동쪽에는 강진만 · 동대만 · 미조항 · 앵강만 등의 만과 작은 포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반부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녹두산(鹿頭山: 451m) · 사학산(四鶴山: 340m) · 삼봉산(三峰山: 422m) · 망운산 · 관대봉(冠帶峰: 595m) · 천황산(天皇山: 395m) · 망기산(望崎山: 340m) · 응봉산(鷹峰山: 473m) 등이 자리하고, 동반부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산성산(山城山: 371m) · 금음산(金音山: 481m) · 대국산(大局山: 375m) · 괴음산(槐陰山: 604m) · 송등산(松登山: 617m) · 노구뒷산(501m) · 금산 등이 펼쳐져 있다. 전국에서 아홉 번째로 큰 섬인 창선도에는 연대산(蓮臺山: 339m) · 동금산(東錦山: 358m) · 대방산(臺芳山: 468m) · 망치산(望峙山: 268m) 등이 있다.

이들 산악에서 발원한 입현천(笠峴川), 동산천(東山川), 초음천(草陰川), 무림천(茂林川), 다천천(茶川川), 화천천(花川川) 등 15개의 하천이 산지를 주1 하여 곳곳에 작은 분지와 평지를 형성하고 각각의 방향으로 흐른다.

기후는 동한 난류의 영향을 받아 온화한 해양성기후를 보인다. 1991~2020년 평년값 기준 연평균기온은 14.3℃이며, 1월 평균기온은 2.2℃, 8월 평균기온은 26.0℃이다. 또한 연강수량은 1,921.2㎜로 우리나라 3대 다우 지역에 속하는데, 강수의 대부분이 여름철에 집중된다. 평균습도는 65.4%이다.

지질구조는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지층이 대부분이며, 불국사 화강암층이 지배적이다. 토양은 대부분 표층이 얕은 산지 암설토이나 해안 지역에는 충적토가 분포한다. 식생으로는 비자나무, 편자꽃, 유자나무, 난음비자림 등이 자생하고 있다.

역사

고대

청동기시대 고인돌이 이동면 다정리, 남해읍의 남변리 · 평현리 · 심천리를 비롯하여 군내 각지의 해안평야와 창선도에까지 밀도 높게 분포되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 섬이 내륙지방 못지않게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으나 690년(신문왕 10)에 신라가 전야산군(轉也山郡)을 두었으며, 757년(경덕왕 16) 남해군으로 개칭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영현(領縣)으로 설치했던 난포현(蘭浦縣)은 본래 내포현(內浦縣)이고, 평산현(平山縣)은 본래 평서산현(平西山縣)[혹은 서평(西平)]으로 모두 이때 개칭하였다.

고려시대

고려 전기인 1018년(현종 9) 남해현(南海縣)으로 강등되었다. 이때 영현인 난포현과 평산현은 왜구의 침범이 심하여 사람이 살지는 못하였다. 남해현도 1358년(공민왕 7) 진주목의 대야천부곡(大也川部曲) 일명 선천(鐥川),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 피란하였다. 창선도는 고려시대에 유질부곡(有疾部曲)이라 했다가 뒤에 창선현(彰善縣)으로 승격되어 진주목의 영현이 되었다. 충선왕(忠宣王: 1275~1325) 때 흥선현(興宣縣)으로 개칭했으나 왜구 때문에 사람이 살기는 힘들었다.

1269년(원종 10) 일본이 변경을 침범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자 창선도에 주2했던 국사(國史)진도로 옮겼다. 고려 후기 왜구의 침범이 날로 심해지자 1384년(우왕 10) 해도도원수(海道都元帥) 정지(鄭地: 1347~1391)가 관음포(觀音浦)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쳤다.

조선시대

조선 전기인 1404년(태종 4)에, 왜구 때문에 진주 땅으로 피란한 지 46년 만에 남해현을 복구하였다. 이때 구라량(仇羅梁) 지금의 경상남도 [사천시] 만호 임덕수(任德秀)가 현령을 겸임하여 남해읍성을 축성하였다. 1414년(태종 14) 하동현과 합쳐져 하남현(河南縣)이 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하동현과 분리되어 진주목의 금양부곡(金陽部曲)을 편입하고 해양현(海陽縣)이 되었다. 2년 뒤에 다시 남해현으로 환원되고 현령을 두었다.

1419년(세종 1) 곤명현(昆明縣)과 합쳐져 곤남군(昆南郡)이 되었다가 1437년(세종 19) 다시 남해현으로 환원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당시 인구는 61호에 271명이었다. 1469년(예종 1)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남해현의 민호가 738호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불과 15년 동안에 인구가 급속도로 회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무렵 흥선도는 진주목 소속의 목장으로서 말 737두를 방목하고 있었다.

세조(世祖: 14171468) 대에 진관(鎭管) 체제가 성립됨에 따라 남해현은 진주진관의 휘하에 들어갔으며, 현령이 절제도위를 겸임하였다. 수군은 제포진관(齊浦鎭管) 휘하의 평산포만호(平山浦萬戶)가 통제하였다. 1486년(성종 17)에는 미조항(彌助項)에 수군첨사진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왜구 때문에 한때 폐쇄했다가 1522년(중종 17) 복구하였다. 이 무렵 문신이자 서예가로 명망이 높던 김구(金絿: 14881534)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남해도에 유배되었는데, 당시 쓴 것이 「화전별곡(花田別曲)」이다.

1598년(선조 31) 임진왜란 막바지에 노량 앞바다에서 대해전이 벌어졌다.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왜군의 퇴로를 가로막아 병선 400척을 섬멸하는 대전과를 올렸으나, 관음포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1633년(인조 11) 고을 사람들이 주3를 세워 제사를 모시다가, 1658년(효종 9) 통제사 정익(鄭榏: 16171683)의 명으로 사당을 크게 중수하였다.

임진왜란 후 흥선도는 창선도라는 옛 이름을 되찾고, 진주목 소속의 말문리(末文里)[지금의 경상남도 사천시]에 합쳐졌다. 1759년(영조 35) 남해현의 인구는 4,491호에 2만 1737명이었다. 1863년(철종 14)에는 진주민란에 호응해 농민 수천 명이 민란을 일으켜서 관아와 창고를 파괴하고 문서를 불태우는 사건이 있었다.

근대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의 개정에 따라 남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05년(광무 9)에는 진주목에 속해 있던 창선도가 남해군에 편입되었으며, 1906년에는 창선도 지역이 창선면으로 승격되면서 남해군은 8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이예모(李禮模)의 주도하에 3월 3일 남해시장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였다.

현대

1964년 1월 20일 삼동면 미조출장소와 서면 중현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68년 한려수도(閑麗水道)가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70년 4월 1일 이동면 상주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는 이동면 상주리의 갈도(葛島)가 통영군 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시]의 욕지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남해대교가 완공, 개통되었다. 이로써 남해군은 완전히 육지와 연결되어, 본래의 농 · 수산업 이외에 관광지로도 각광받게 되었다.

1979년 5월 1일 남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에는 창선교가 개통되어 남해도창선도가 연결되었다. 1983년 삼동면 난음리가 이동면에, 서면 연죽리 일부가 남해읍에 편입되었다. 1986년 4월 1일에는 상주출장소와 미조출장소가 각각 상주면과 미주면으로 승격되었다. 1988년 동이 ‘이(里)’로 개칭되었으며, 1989년 1월 1일 상주면 상주리 일부가 미조면 송정리에 편입되었다.

유물 · 유적

2024년 12월 기준 남해군의 국가유산은 106개로, 이 중 국가지정문화유산은 14건[보물 3건, 사적 2건, 명승 3건, 천연기념물 5건, 등록문화유산 1건], 도지정문화유산은 87건[유형문화유산 23건, 기념물 15건, 민속문화유산 1건, 무형유산 1건, 문화유산자료 47건]이다.

선사시대 문화유산으로는 이동면의 남해다정리지석묘(南海茶丁里支石墓)[경상남도 기념물, 1983년 지정]를 비롯해 남해읍 평현리 · 심천리, 남면 상가리 · 평산리 · 당항리, 창선면 당항리, 고현면 대곡리 등지에 고인돌이 남아 있다. 남해읍 남변리 · 평현리 · 심천리, 미조면 미조리, 창선면 서대리에서는 민무늬토기석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한편, 고현면 도마리에서는 초기 철기시대 조개더미가 발견되었으며, 김해식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성터로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설천면 진목리의 남해 대국산성(大局山城)[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과 임진왜란 당시 축성한 남면 상가리의 남해 임진성(壬辰城)[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 그리고 옥기산성(玉岐山城) · 금오산성(金鰲山城) 등의 산성이 있다. 이 밖에 상주포성(尙州浦城) · 미조진성(彌助鎭城) · 평산포진성(平山浦鎭城) · 노량진성(露梁鎭城) · 당항포성(唐項浦城) · 창선성(昌善城)[혹은 진동성성(鎭洞鎭城)] 등의 수군 진성(鎭城)과, 1597년(선조 31) 왜군이 축성한 남해읍 선소리의 천남대 왜성(天南臺 倭城) 터가 남아 있다.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조선 태조(太祖: 1335~1408)와 관련된 전설을 간직한 상주면 상주리의 남해 금산(南海 錦山)[명승, 2008년 지정]에는 남해금산봉수대(南海錦山烽燧臺)[경상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가 있다. 양아리에는 남해양아리석각(南海良阿里石刻)[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이 있는데, 편평한 자연암에 그림문자를 새긴 것으로 아직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고려 후기 왜구 토벌에 전공을 세운 최영(崔瑩: 13161388)의 사당인 무민사(武愍祠)가 미조면 미조리에 있으며, 관음포에서 왜구를 크게 격파한 정지(鄭地: 13471391)를 기리는 남해 정지석탑(南海 鄭池石塔)[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1983년 지정]은 고현면 대사리에 있다.

조선시대 문화유산으로 대표적인 것은 설천면 노량리의 남해 충렬사(南海 忠烈祠)[사적, 1973년 지정]와 고현면 차면리의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南海 觀音浦 李忠武公 遺蹟)[사적, 1973년 지정]이다.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에는 이충무공유허비와 이충무공사적비가 있다.

설천면의 노량은 400여 년 전에 형성된 역사적인 곳이다. 한양에서 이곳으로 귀양 오는 선비들에게 노량 앞바다의 물결이 마치 이슬방울이 모여서 교량을 이룬 듯 보였는데, 고향을 떠난 이들의 향수를 자아내어 ‘노량’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유래가 전한다. 1598년(선조 31) 이순신 장군이 노량 앞바다에서 순국함으로써 그 얼을 간직한 마을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밖에 남해 객관의 동쪽에 주변루(籌邊樓)가 있고, 이동면 용소리에 임진왜란 때 썼던 삼혈포(三穴砲)가 남아 있다.

탑비로는 자암 김선생 적려유허비(自菴 金先生 謫廬遺墟碑)가 설천면 노량리에 있고, 남해 장량상 동정마애비(南海 張良相 東征磨崖碑)[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1972년 지정]가 남해읍 선소리에, 이이명(李頤命: 1658~1722)을 배향했던 봉천사묘정비(鳳川祠廟庭碑)가 북변리에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호구산 용문사(虎丘山 龍門寺), 망운산 화방사(望雲山 花芳寺), 금산 보리암(錦山 菩提庵) 등의 사찰이 있다. 그중 이동면 용소리에 있는 호구산 용문사에는 남해 용문사 대웅전(南海 龍門寺 大雄殿)[보물, 2014년 지정] · 남해 용문사 석조보살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1974년 지정] · 남해 용문사 천왕각(龍門寺 天王閣)[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 · 남해 용문사 명부전(龍門寺 冥府殿)[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고현면 대곡리에는 남해 화방사 채진루(南海 花芳寺 埰眞樓)[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 이동면 상주리에 남해 보리암 삼층석탑(南海 菩提庵 三層石塔)[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1974년 지정], 남해 다정리 삼층석탑(南海 多丁里 三層石塔)[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1974년 지정], 남면 당항리의 남해 신흥사지 삼층석탑[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1983년 지정], 삼동면의 봉화리 삼층석탑 등이 있다.

유교 유적 · 유물로는 남해읍 북변리의 남해향교(南海鄕校)[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1983년 지정]를 비롯해 남해 운곡사(南海 雲谷祠)[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1983년 지정], 유희경 촌은집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1979년 지정], 남해 남면 향약계 관련 자료(南海 南面 鄕約契 關聯 資料)[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1983년 지정]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난대 상록수 20여 종 230수 정도가 자생하고 있는 미조면 미조리의 남해 미조리 상록수림(南海 彌助里 常綠樹林)[1962년 지정]을 비롯해 삼동면 물건리의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南海 勿巾里 防潮魚付林)[1962년 지정], 고현면 대곡리의 남해 화방사 산닥나무 자생지(南海 花芳寺 산닥나무 自生地)[1962년 지정], 고현면의 남해 갈화리 느티나무(南海 葛花里 느티나무)[1982년 지정], 창선면 대벽리의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南海 昌善島 王厚朴나무)[1982년 지정] 등이 있다.

남면 홍현리에는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남해가천암수바위(南海加川암수바위)가 자리한다.

남해군 지역에는 23개의 주4이 보전되어 있는데, 특히 창선면 지족해협 일원에 있는 죽방렴은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南海 只族海峽 竹防簾)이란 명칭으로 2010년에 명승으로 지정되었고, 2015년에는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 어업이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편, 죽방렴 체험은 국가유산청의 ‘2024년 생생 문화유산 150선’에 들기도 하였다.

이 외에 무형유산으로 남해안별신굿(南海岸別神굿)[국가무형유산, 1987년 지정]과 남해선구줄끗기(南海仙區줄끗기)[경상남도 무형유산, 2003년 지정]가 있다.

교육 · 문화

조선 전기인 1404년 현령을 둘 무렵에 함께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남해향교가 이 지역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그러나 고려 후기인 1339년(충숙왕 8) 남해로 퇴거한 백이정(白頤正: 12471323)이 지역의 자제들을 교육하였다고도 전한다. 1520년대 초반 김구(金絿: 14881534)가 남해로 주5되자 학도들이 그를 따라와서 배웠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순신 장군의 공훈을 기리는 남해 충렬사(南海 忠烈祠)[사적]가 주민들의 발의로 건립되어 1663년(현종 4) 사액(賜額)을 받았고, 지역의 향교와 함께 향리 자제들의 교육 기반이 되었다.

1721년(경종 1)에는 이이명이 오늘날의 북변리으로 정배되어 와서 학사를 짓고 학문을 강론하였다. 1828년(순조 28) 후학들이 그 자리에 봉천사(鳳川祠)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백이정의 유적지에는 난곡사(蘭谷祠)가 세워졌고, 1853년(철종 4) 서면 중현리에는 운곡사가 건립되어 유생들을 양성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2년에 지금의 남해초등학교가 개교한 것을 비롯하여 창선초등학교, 성명초등학교, 설천초등학교 등이 개교하여 점차 1면 1교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32년 개교한 남해농업실수학교는 1941년 남해공립농업전수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38년에는 남해공립수산실수학교가 개교하였다.

2025년 3월 1일 기준 남해군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3개, 중학교 9개, 고등학교 7개가 있으며, 경남도립남해대학이 있다.

한편, 남해군의 교육기관과 학생 수는 대부분 남해읍에 집중되어 있다. 초등학교는 남해읍 북변리에 위치한 남해초등학교에 486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중학교는 서변리의 남해여자중학교[179명]와 북변리의 남해중학교[195명]에 재학생이 많다. 고등학생 역시 북변리의 남해제일고등학교[355명]를 비롯하여 이동면 무림리의 남해고등학교[277명], 남면 평산리의 남해해성고등학교[267명] 등 대부분 고등학생이 읍내 또는 인근 지역 학교를 다니고 있다.

남해군에서는 교육기관의 공간적 편중으로 인한 원거리 통학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통학버스를 운행하고, 방과 후 교통 지원 서비스 등을 시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남해군 전역에는 이순신바다공원, 남해유배문학관, 남해탈공연박물관, 남해각, 남해스포츠파크 조각공원, 남해문화센터, 남해보물섬시네마 등 문화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남해읍 서변리에 남해도서관이 있다.

이 중 남해유배문학관은 남해군의 조선시대 유배지였던 역사를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남해군 지역은 조선시대 230여 명의 유학자가 유배를 왔던 곳으로, 김구의 「화전별곡」, 김만중(金萬重: 16371692)「구운몽(九雲夢)」, 유의양(柳義養: 1718?)『남해문견록(南海聞見錄)』 등의 유배 문학이 이곳에서 탄생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남해유배문학관이 국내 최초, 최대 규모로 세워졌으며, 유배와 유배 문학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 습득을 위한 전문 공간으로 꾸며지고 있다.

남해탈공연박물관은 2008년 폐교가 된 남해군 이동면의 이동초등학교 다초분교를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곳이다. 총 2층 규모로 다초실험극장, 도서관, 국제탈전시장, 기획전시실, 탈 수장고, 공연예술 자료 수장고, 촬영실, 휴게실 등을 갖추었고, 탈과 관련한 공연과 체험이 가능하도록 조성한 종합문화공간이다.

문화 행사로 11월 8일을 남해군민의 날로 지정하고 종합 문화예술행사인 화전문화제를 거행한다.

남해군에서는 사계절에 걸쳐 지역의 특색을 살리며 다양한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1월에는 상주 해돋이 및 물메기 축제[2000년부터 시작]와 다랭이마을 해맞이 행사[2002년부터 시작]가 열리며, 4월에는 창선고사리삼합축제[2016년부터 시작], 5월에는 독일마을 마이페스트[2022년부터 시작]와 보물섬 미조항 멸치축제[2004년부터 시작], 6월에는 남해마을한우축제[2005년부터 시작], 10월에는 독일마을 맥주축제[2010년부터 시작] 등이 개최된다.

민속

군내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석사놀이(石射놀이)와 남승도놀이(覽勝圖놀이)가 있다. 일명 석전(石箭)이라고도 하는 석사놀이는 주로 추석에 씨름대회와 함께 행해진다. 지름 10∼15㎝, 높이 2m 정도의 통나무를 세워 놓고 15m 떨어진 거리에서 주먹만 한 돌을 15개씩 가지고 표적에 던져 맞히는 것이다. 다섯 번 던져서 적중도가 높은 사람이 이기는데, 준비물과 놀이 방법이 간단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민속놀이이다.

지금은 행해지지 않지만 남해읍 서변리에서 전래하던 남승도놀이는 한지에다 모필로 중국의 고적 명승지를 기록하고, 그 진로의 순서를 표시한 것이다. 사객(詞客), 우사(羽士), 미인(美人), 치의(緇衣), 검객(劍客), 어부(漁夫) 등이 나와 경쟁하는 놀이이다. 이 밖에도 농악, 줄다리기, 활쏘기 등이 전해지며, 어린이들은 말놀이, 까막잡기, 고누 등의 놀이를 즐겼다.

설화 · 민요

설화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로는 지명유래담과 자연물에 얽힌 설화,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가 주류를 이룬다. 설천면과 고현면 사이에 있는 대국산성에는 축조 유래담이 전한다. 이동면 금산의 상사바위에는 주인의 딸을 사랑한 하인의 설화가 전해 온다. 남해읍에서 5㎞ 떨어진 무지개골에는 무지개 때문에 헤어진 부부의 이야기가 지명유래담으로 내려온다. 이 밖에도 장자못 유형의 「달구산 전설」,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형 유운룡(柳雲龍: 15391601)의 지략으로 왜군을 무찔렀다는 「가청곡 전설」, 해마다 풍어제를 올리는 가친미륵불에 관한 전설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 중 대국산성 축조 유래담을 자세히 말하면, 설천면 비란리 대국산 밑에 의좋은 형제가 살았는데, 한 처녀를 똑같이 사랑하게 되었다. 형제가 서로 애만 태우다가 형이 먼저 동생 ‘청’에게, “그녀가 두루마기를 짓는 동안 나는 30관의 쇠줄을 발에 묶고 20리 되는 읍에까지 갔다 오기로 하고, 너는 대국산에 성을 쌓기로 하여 이긴 사람이 그녀와 혼인하기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동생 청이 먼저 성을 쌓자 형은 약속한 대로 칼로 가슴을 찔러 죽고 말았다. 형을 잃은 청이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왜구가 침입하자, 청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성을 이용해 왜구를 격퇴하였다. 지금도 대국산성에는 왜구의 대포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다.

민요

지역에서 구전되는 민요노동요가 중심이 되며, 어업노동요와 농업노동요의 비중이 비슷하다. 남해군은 영남권에 속하지만 호남지방과 인접해 민요에서 호남 지역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전라도와의 내왕이 쉽고 빈번해 육자배기토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자소리」라고도 하는 모내기노래는 보편적인 사설과 가락으로 불린다. 논매기노래로는 ‘상사디어’형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전형적인 「육자배기」를 부르기도 한다. 밭매기노래는 모내기노래의 사설을 사용해 여음 없는 장절 형식의 메나리토리로 부른다.

어업노동요로는 「노젓는 노래」와 「그물 당기는 노래」, 「고기푸는 노래」가 있고, 여성 노동요로는 「베틀노래」와 「방아노래」 등이 있다. 또 여러 일에 두루 부르는 「시집살이노래」도 전한다. 의식요로는 「상여노래」가 있다. 이 밖에도 남해 금산의 경치를 노래한 「금산」, 지역의 명물인 유자를 노래한 「염불가」 등이 있다. 아리랑류에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 많이 있으며, 일본과의 관계를 문제 삼고 있는 민요도 있다.

산업

남해는 2022년 기준 전체 면적 357.7㎢ 중 임야가 237.8㎢로 약 66%를 차지하는데, 이 중 망운산과 금산, 원산 등 산악의 비중이 가장 많다. 하천은 모두 짧고 평야가 협소한 지형 조건을 갖고 있다. 산악의 지형을 논으로 변형시킨 계단식 논밭인 다랑이논을 통해 주요 생산물인 마늘과 쌀을 이모작하는 방식으로 토지 이용률을 높여 왔다. 2022년 기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총 경지면적은 52.61㎢로서, 논이 25.01㎢, 밭이 27.60㎢이다.

남해는 농업 의존도가 높은 지역에 속한다. 농가는 2022년 기준 6,937가구이며, 농가인구는 1만 3237명으로 농가 인구율이 31%에 달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주곡인 쌀 외에도 마늘, 고구마, 보리, 잡곡, 콩 등이 주로 생산된다. 축산업으로는 한우, 닭, 돼지, 염소, 면양 등을 기르고 있다.

해안은 굴곡이 심하고 2022년 기준 360.62㎞에 달하는 긴 해안선이 있어 어족 자원이 풍부하고 연근해 어업의 전진기지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럭, 광어, 전복, 우렁쉥이, 피조개, 굴, 미역, 바지락, 보리새우 등의 양식 적지이며, 연안 바다에서는 감성돔, 삼치, 멸치, 도다리 등이 많이 잡힌다.

선박의 출어와 수산물 가공 등을 뒷받침하기 위해 1986년 미조항을 어업 전진기지로 삼고 제빙 공장, 수산물 판매장, 냉동 설비 등을 갖추어 소득 증대에 힘쓰고 있다. 또한 상주면에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설치한 남동해수산연구소남해양식연구센타가 있어 종묘 생산과 기술 보급에 힘쓰고 있다.

공업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으나 음료 · 화학 · 의복 · 비금속 제품 등이 생산되며, 특히 고현농공단지에 입주한 동은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로서 남해군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산업구조를 요약하면, 판매 및 서비스업을 위주로 하는 3차산업의 비중은 49%로서 가장 큰 편이며, 농수산업 등 1차산업 종사자의 비율은 47%로 다른 지역에 비해 1차산업 종사자가 높은 편이다. 광공업과 제조업 등 2차산업은 전체 산업의 4%로 미약한 편이다.

교통

1973년 총연장 660m의 남해대교가 개통하여 경상남도 하동군과 연결되어 있다. 1980년 창선교가 완공되어 본섬과 창선도가 연결되었다. 또한 2003년 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의 연결성이 대폭 향상되어 사통팔달의 교통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창선면과 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을 잇는 3.4㎞의 창선-삼천포대교는 늑도와 초양섬, 모개섬 등 3개의 섬을 징검다리로 이용하여 지어졌다.

2018년에는 설천면 노량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를 연결하는 노량대교가 준공되었다. 노량대교는 세계 최초의 경사주탑 현수교로, 총연장은 990m, 주탑 높이는 148.6m 규모이다. 노량대교는 남해대교 인근에 건설되어 남해안권의 접근성을 크게 개선하고 있다.

1997년에 완공된 남해공용터미널은 육상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남해군은 각 면 소재지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외곽 도로를 순차적으로 신설 · 확장하고 있다. 해상교통망은 부산, 여수, 통영 등과의 연결을 통해 외부 접근성을 보완하고 있다.

관광

남해군은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 비교적 높은 산지라는 지형적 특성을 바탕으로 관광산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지역 관광산업의 핵심 역할을 한 것은 남해대교의 건설이다. 1973년 설천면 노량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를 잇는 남해대교의 개통으로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관광객의 수가 증가하였다.

해안과 산악 지형을 활용한 주요 관광지로는 한려해상국립공원남해 가천마을 다랑이논(南海 加川마을 다랑이논)[명승], 남해 금산, 남해대교, 상주은모래비치, 남해바래길,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 등이 있다. 또한 남해군의 역사를 살린 관광지에는 남해독일마을, 남해 충렬사,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과 남해 12경 중 하나인 ‘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와 노도’ 등이 있다. 그중에 남해독일마을은 파독 광부 · 간호사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마을로, 2024년 기준 남해 관광지 1위 지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남해군은 1997년 독일 노르트프리슬란트 지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국제 교류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파독 근로자들을 위해 1999년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한편, 독일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접목한 특색 있는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 독일마을 조성 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2003년 독일마을단지 조성 공사를 완공하였고, 2014년 남해파독전시관을 개관하였는데, 독일식 주택의 이색적인 경관과 분위기로 인해 남해군에서는 최다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산악이 많은 섬 남해군에는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랑이논이 대부분이다. 특히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논은 바다를 앞둔 설흘산(雪屹山: 490m)과 응봉산의 가파른 45도 경사 비탈의 지형에 맞춰 108개 층의 680여 개의 논을 계단 모양으로 만들어 높은 산과 넓게 트인 바다가 미학적이기에 명승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다랑이를 남해군 지역에서는 ‘다랭이’라고도 한다. 자연경관에 인간의 흔적이 혼재되어 있는 문화경관으로서 다랑이논은 남해군 지역의 관광 체험 명소가 되었다.

읍면

남해읍(南海邑)

군의 서부 중앙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7.16㎢이고, 인구는 1만 2257명이다. 읍 소재지는 북변리이다. 본래 남해면이었으나 1979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읍을 중심으로 북쪽에 강구산[213m], 서쪽에 관대봉, 남쪽에 괴음산, 동남쪽에 월구산이 에워싸고 있다. 서쪽은 대부분 산지이고, 동쪽은 바다와 접한 해안으로 평야를 이룬다. 농경지는 해안의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며, 서쪽의 산간 계곡을 흘러내리는 소규모 하천들이 이루어 놓은 골짜기에도 논이 많다. 특히 차산리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고, 북변리 · 평현리 · 남변리 · 선소리 일대와 토촌천 유역의 입현리에도 논이 넓게 분포한다.

해안을 따라 농경지가 비교적 넓게 분포하며,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는 저수지가 많아 벼농사에 유리하다. 남해읍은 · 보리와 기타 잡곡류에 복숭아 · · · 유자 · 비자 · 치자 등 과실나무와 각종 채소가 생산된다. 특히 마늘 생산량이 많다. 한우 · 돼지 등을 사육하며 최근에는 양식업이 점차 발달하고 있다.

남해대교를 통하는 국도가 읍의 중심지를 지나고, 또 군내 각지를 연결하는 도로망이 발달해 교통의 중심지가 될 뿐 아니라 군청이 자리한 행정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고현면(古縣面)

군의 북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8.93㎢이고, 인구는 3,232명이다. 면 소재지는 대사리이다.

신라 신문왕(神文王: ?692) 때 전야산군의 소재지여서 군내면(郡內面)이라 불렸다. 고려 공민왕(恭愍王: 13301374) 때 진주군의 대야천면(大也川面)에 속하기도 했으나 조선 태종(太宗: 1367~1422) 때 설치된 남해군에 이속되었다. 전야산군의 옛 현 소재지였으므로 고현면이라 하였다.

대곡리의 양지에서 발원한 대곡천(大谷川)이 동쪽으로 흐르며, 북쪽의 남티리 덕신재에서 발원한 대사천(大寺川)이 남서쪽으로 흐른다. 상류에 남티저수지가 있다. 서쪽은 바다와 접하며 섬이 많다. 북쪽에 녹두산, 남쪽에 삼봉산이 각각 솟아 있다.

특산물은 마늘이며, 농사 못지않게 수산업 분야도 주요 소득원이 되고 있다. 특히 갈화리에서 흰다리새우가 대량 양식되고 있다.

남면(南面)

남해군의 남쪽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3.50㎢이고, 인구는 3,256명이다. 면 소재지는 당항리이다. 본래 남해군 지역으로, 신라 신문왕 때부터 남면이라 칭하고 집강(執綱)을 두었다가 1907년(광무11)부터 면장을 두었다. 덕월 · 평산 · 상가 · 유구(鍮九) · 죽전 · 우형(牛形) 등 1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9개 리로 개편되었다.

동쪽으로 앵강만을 끼고 있으며, 북쪽의 천황산에서 발원한 상가천(上加川)이 남서쪽으로 흐른다. 중앙의 망기산에서 발원한 오리천(五里川)이 동쪽으로 흘러간다. 서쪽과 남쪽은 여수만(麗水灣)을 경계로 경상남도전라남도로 구분된다.

밭작물로 보리가 많이 생산되며, 고구마와 치자가 군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미조면(彌助面)

남해군의 최남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5.70㎢이고, 인구는 2,045명이다. 면 소재지는 미조리이다. 1944년 삼동면 미조리 및 송정리가 미조출장소가 되어 삼동면과 독립적으로 행정 업무를 해 오다가 1986년 면으로 승격되었다.

삼면이 바다와 접하며, 해안선의 총연장은 38㎞에 달한다. 주민 대부분이 어업 소득에 의존하고 있다. 연근해에 어업 전진기지 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어선의 출입이 자유롭고, 정치망 어업과 어류 축양업이 활발하다. 특히 멸치 · 장어 · 삼치 등의 어획과 우렁쉥이 · 전복 · 피조개 등의 양식 생산량이 많다.

삼동면(三東面)

남해군의 동단, 금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1.20㎢이고, 인구는 3,648명이다. 면 소재지는 지족리이다. 조선 태종 때 6개 동으로 조직되어 있다가, 1818년(순조 18) 다시 9개 동으로 개편되면서 남해읍에서 동쪽으로 세 번째에 자리한 면이라 삼동면으로 불렀다.

이동면의 금산에서 발원한 동천(洞川)이 북동쪽으로 흐른다. 북쪽은 지족해협을 사이에 두고 창선면과 마주 보며, 강진해와 접한다. 남쪽은 미조만(彌助灣)을 끼고 20여 개의 섬이 산재해 있다. 예로부터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남해군 안에서도 장수촌으로 꼽힌다. 개불 양식이 활발해 특산물로 꼽힌다.

상주면(尙州面)

남해군의 동남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3.8㎢이고, 인구는 1,544명이다. 면 소재지는 상주리이다. 유인도인 노도와 4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신라원효(元曉: 617~686)가 전국 각지를 순례하다가 보광사(普光寺)에서 쉬면서 『화엄경』을 강론할 때, 각처 사람들이 찾아와 편히 살 수 있는 곳을 묻자 “산하상주(山下常住)“라 하였다. 후세인들은 이를 상주(尙州)라 표기했으며, 그 뒤 많은 사람이 이 고장에 고을이 형성될 것이라 예언하고 지명을 상주라 썼다. 지역의 80% 이상이 험준한 산악으로 되어 있으며, 금산과 천황산, 상주은모래비치 등이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어 연중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금산은 옛날 이성계(李成桂)가 200일 기도로 산신의 영험을 얻어 조선을 건국했다는 전설로도 유명한 산으로, 38경을 자랑할 만큼 산수가 수려하여 남한의 금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요 농산물로 쌀과 고구마, 마늘 등을 재배한다. 연안의 바다에서는 볼락, 우렁쉥이, 성게, 전복, 미역, 우뭇가사리, 해삼, 멸치 등이 어획, 채집되고, 피조개 양식도 활발하다. 특히 성게와 전복은 맛이 좋아 지역의 특산품으로 손꼽힌다.

서면(西面)

남해군의 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1.0㎢이고, 인구는 2,404명이다. 면 소재지는 서상리이다.

조선 세종(世宗: 1397~1450) 때는 농면(農面)이라 하여 집강에 의해 다스려지다가 1906년(광무 10) 면장제로 바뀌었다. 남해읍의 서쪽에 있어 서면이라 불린다. 면의 서쪽은 여수만을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의 경계를 이룬다. 면내에는 망운산 · 증봉(甑峰: 542m) · 관대봉 등이 있다. 대부분 산간지에 위치한다.

주민 대부분이 긴 해안선을 따라 풍부하게 생산되는 수산물 덕분에 높은 소득을 올린다. 특산물로는 고구마가 꼽히고, 피조개 양식을 많이 한다. 교통은 해안 일주도로와 남해읍에서 서상리까지 8㎞가 확장, 포장되어 접근이 편리하다.

설천면(雪川面)

남해군의 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4.90㎢이고, 인구는 2,620명이다. 면 소재지는 남양리이다. 본래 남해군의 지역으로 설천면이라 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남해대교가 하동군 금남면과 연결되어 있다. 동쪽에는 금음산이 있다. 농사 외에 수산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6개의 무인도와 북동쪽으로 해안선이 있어 연근해 어업이 이루어진다. 이 밖에 굴 · 피조개 · 바지락 · 김 등의 양식장이 있으며, 특히 김은 품질이 뛰어나 다른 지역으로 잘 팔려 나간다.

이동면(二東面)

남해군의 남부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7.05㎢이고, 인구는 3,576명이다. 면 소재지는 무림리이다. 본래 남해군 지역으로 조선 태종 때부터 이동면이라고 불렸다. 1894년(고종 31) 이동면은 성남면(城南面)과 이동면으로 분리되어 집강에 의해 다스려지다가 1906년 다시 성남면과 합병하고 이동면으로 하였다.

금산에서 발원한 복곡천(福谷川)이 북서쪽으로 흘러 앵강만으로 들어간다. 서쪽의 송등산에서 발원한 다천천이 북으로 흘러 강진해로 들어간다. 상류에 다정저수지(茶丁貯水池)가 있다.

논과 밭의 비율은 2:1로 밭작물의 생산량이 비교적 많다. 특산물로는 봄무가 유명하다. 이 밖에도 흑염소 · · 돼지 등의 가축 사육도 농가 소득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창선면(昌善面)

남해군의 북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4.4㎢이고, 인구는 5,250명이다. 면 소재지는 상신리이다. 창선도 전체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행정적으로는 남해군에 속해 있으나 생활권은 경상남도 사천시에 속한다.

면의 70% 이상이 임야이며, 논과 밭의 비율은 1.4:1이다. 특산물로 유자가 많이 생산되며, 사면이 바다인 데다 굴곡이 좋아 질 좋은 조개류가 명산물로 꼽힌다.

참고문헌

단행본

『남해군통계연보 2007』(남해군, 2008)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남해군지』(남해군지편찬위원회, 1994)
『부일연감: 부산·경남』(부산일보사, 1986)
『경남교육통계연보』(경상남도교육위원회, 1985)
『교남지』(오성사, 1985)
『한국의 민속음악: 경상남도민요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사향록』(남해향토문화연구회, 1984)
『남해의 얼』(남해군문화공보실, 1983)
『경남교육사』(경상남도교육위원회, 1980)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경상남도편』(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2)
김소운, 『언문조선구전민요집』( 제일서방, 1933)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원래의 지형면이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골짜기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지형으로 바뀌는 일. 우리말샘

주2

거두어서 깊이 간직함. 우리말샘

주3

짚이나 갈대 따위로 지붕을 인 집. 우리말샘

주4

좁은 바다 물목에 대나무로 만든 그물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일. 또는 그 그물. 우리말샘

주5

죄인을 지방이나 섬으로 보내 정해진 기간 동안 그 지역 내에서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게 하던 일. 또는 그런 형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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