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보면, 곤남군에는 봉화가 세 곳 있는데, 금산봉화는 남해도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본도(本道) 소흘산봉화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경상도지리지』에 보면, 금산연대봉화는 남해도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남해 소흘산연대봉화와 연락하는데, 거리가 육로로 30리라고 하였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 보면, 남해 금산봉화는 북쪽으로 진주 흥선도 대방산봉화, 서쪽으로 현(縣) 남쪽 소흘산봉화·원산봉화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남해 금산봉화는 북쪽으로 진주 대방산봉화, 서쪽으로 소흘산봉화·원산봉화에 연락한다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전국 봉수의 주요 간선은 5개 직봉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제2거(炬)는 동래서울 간으로 직봉 44개와 간봉 110개로 이루어졌다.
제2거 봉수에는 10개의 간봉 지선이 있다. 남해 금산에서 첫 봉화를 피운 간봉은 진주 대방산→각산→사천 안현산 등을 거쳐 충주의 망이산 직봉으로 연결되었다. 이처럼 금산봉수는 처음 봉화를 피우는 경상도 남해안의 중요한 봉수의 하나였다.
봉수대는 금산 상봉인 망대에 있다. 설치 연대는 고려 중엽으로 추측되고 있다. 높이는 4.5m, 둘레는 26m의 방대형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이곳에는 오장 2명과 봉졸 10명이 있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다. 조선시대 남해안의 봉수제도와 봉수대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