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금산 봉수대 ( )

목차
관련 정보
남해 금산 봉수대
남해 금산 봉수대
통신
유적
국가유산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고려시대 금산 정상에 위치한 봉수대.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남해금산봉수대(南海錦山烽燧臺)
분류
유적건조물/교통통신/통신/봉수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기념물(1987년 05월 19일 지정)
소재지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257-3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고려시대 금산 정상에 위치한 봉수대.
내용

1987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보면, 곤남군에는 봉화가 세 곳 있는데, 금산봉화는 남해도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본도(本道) 소흘산봉화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경상도지리지』에 보면, 금산연대봉화는 남해도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남해 소흘산연대봉화와 연락하는데, 거리가 육로로 30리라고 하였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 보면, 남해 금산봉화는 북쪽으로 진주 흥선도 대방산봉화, 서쪽으로 현(縣) 남쪽 소흘산봉화·원산봉화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남해 금산봉화는 북쪽으로 진주 대방산봉화, 서쪽으로 소흘산봉화·원산봉화에 연락한다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전국 봉수의 주요 간선은 5개 직봉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제2거(炬)는 동래­서울 간으로 직봉 44개와 간봉 110개로 이루어졌다.

제2거 봉수에는 10개의 간봉 지선이 있다. 남해 금산에서 첫 봉화를 피운 간봉은 진주 대방산→각산→사천 안현산 등을 거쳐 충주의 망이산 직봉으로 연결되었다. 이처럼 금산봉수는 처음 봉화를 피우는 경상도 남해안의 중요한 봉수의 하나였다.

봉수대는 금산 상봉인 망대에 있다. 설치 연대는 고려 중엽으로 추측되고 있다. 높이는 4.5m, 둘레는 26m의 방대형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이곳에는 오장 2명과 봉졸 10명이 있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다. 조선시대 남해안의 봉수제도와 봉수대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
『대동지지』
『한국의 봉수제도』(국방군사연구소, 1997)
『경남문화재대관-도지정편-』(경상남도, 1995)
『남해군지』(남해군, 1994)
「통신수단의 관리」(최완기, 『한국사』24, 국사편찬위원회, 1994)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