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중기의 성리학자인 조식(1501∼1572)은 1501년(연산군 7)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토골(兎洞, 외토리)에서 아버지 언형(彦亨)과 어머니 인천이씨(仁川李氏) 사이에서 3남 5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健中), 호는 남명(南冥)이다.
본가는 삼가 판현이고, 토골(토동)은 조식의 외가이다. 다섯살 때까지 외가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장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자 서울로 이사하였다.
조식의 생가는 새마을운동의 지붕개량사업으로 초가를 슬레이트로 개량하던 1970년에 초가를 지붕 개량하지 않고 헐리게 되었다. 죽담(기단)에 사용했던 자연석과 흙은 마을의 도로확장 등 새마을사업에 사용되었고, 현재는 죽담의 일부와 초석만이 남아 있다.
건물은 안채, 아랫채,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안채와 아랫채는 헐리고, 사랑채만 남아 있다. 높은 죽담 위에 안채가 정남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안채의 동쪽편에 아랫채가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안채 앞쪽에 사랑채가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3칸의 초가지붕으로, 부엌+큰방+작은방의 평면 구성이다. 큰방 앞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었다. 아랫채는 정면 3칸의 초가지붕으로, 변소(상부)ㆍ돈사(하부)+퇴비사+우사의 평면 구성이다.
사랑채는 정면 2칸, 측면 3칸의 슬레이트 지붕으로 전면 2칸이 대청, 가운데 2칸이 2개의 방, 후면은 부엌아궁이와 광으로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