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민 장군 전공비(金時敏將軍戰功碑)는 임진왜란 때에 김시민의 전공을 새긴 석비로, 진주 전성각적비(晉州全城却敵碑)라고도 부른다. 1972년 2월 12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다.
김시민(金時敏, 1554∼1592)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면오(勉吾)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사하였다. 1591년(선조 24)에 진주판관이 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목사 이경(李璥)을 대신하여 목사직을 역임하였다.
1592년 10월 진주성 1차전투에서 진주판관 성수경(成守慶), 곤양군수 이광악(李光岳), 함창현감 강덕룡(姜德龍), 의령의병장 곽재우(郭再祐), 거창의병장 김면(金沔), 합천의병장 정인홍(鄭仁弘) 등 경상우도 관군과 의병을 연합하여 일본군을 물리쳤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추록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고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추봉되었다.
비는 진주성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칸 맞배지붕의 비각으로 보호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진주 주민의 열망에 따라 1619년(광해 11)에 세운 것이다. 성균관진사 성여신(成汝信)이 글을 짓고, 성균관생원 한몽인(韓夢寅)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는 1천명도 안되는 병력으로 10만명의 군대를 물리쳤다고 했으나, 다른 기록에는 3,800여명으로 2만명의 적을 격퇴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