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봉수대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보면, 울산군에는 봉화가 여덟 곳 있는데, 이길봉화는 북쪽으로는 하산봉화, 남쪽으로는 아이포봉화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 보면, 이길봉화는 동쪽으로는 하산봉화, 북쪽으로는 가리산봉화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봉수란 밤에 불로써 알리는 연봉(燃烽)과 낮에 연기로써 알리는 번수(燔燧)를 합친 말이다. 긴급한 사정이 생기면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연락을 하였다. 신호를 알리기 위해서 수십 리 거리를 두고 전망과 관측이 쉬운 산마루에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각 봉수대는 이웃 봉수대와 연락망을 이루고 있었다. 연락망은 간선(幹線)과 지선(支線)으로 나뉘었다. 간선은 변경에서 서울로 직접 통하므로 직봉(直烽)이라 하였다. 그 사이에 보조선으로 지선이 있었는데 간봉(間烽)이라 하였다.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보면, 이길봉수는 울산부의 남쪽 67리에 있다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 병고 봉수에 의하면, 전국 봉수의 주요 간선은 5개 직봉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제2거(炬)는 동래―서울간으로 직봉 44개와 간봉 110개로 이루어졌다. 제2거 봉수에는 10개의 간봉 지선이 있다. 이 가운데 이길봉수는 남해안 제1간봉으로, 동래의 간비오→ 기장의 남산→ 아이→ 울산의 이길→ 가리하산(또는 하산→ 가리)→ 천내→ 남목으로 연결되었다.
해발 129.2m의 봉태산 정상에 있는 봉수대의 중앙 봉돈은 높이 2.4m, 지름 9m의 돌로 쌓은 것이다. 중앙의 봉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직경 약 30m인 환상(環狀)의 담장과 그 외곽으로 호가 둘러 있다. 담장의 폭은 1.5∼2.5m이고, 높이는 1∼2.5m로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돌로 쌓은 봉돈과 담장, 담장 밖의 호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상태이다. 이 곳에는 오장과 봉졸을 배치하여 교대로 지켰다. 현존하는 봉수대 가운데 비교적 원형을 잘 알 수 있는 봉수대이다. 봉수대의 해안쪽 바로 밑에는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서생포 방면의 군사정보를 중앙으로 알리는 통신시설의 하나였다. 조선시대 남해안의 봉수제도와 봉수대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최근 이길봉수대의 명칭이 잘못되었으므로, 이를 정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울산군 서생면 나사리에 있는 나사(羅士)봉수대가 원래의 이길봉수대고, 현재 효암리 뒷산에 있는 이길봉수대는 아이봉수대로 정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아이봉수대를 현재 이길봉수대로 혼돈하게 된 이유는 『대동여지도』에 있었다. 『대동여지도』에는 아이봉수대가 임랑포보다 남쪽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보면 현재 효암리 뒷산의 봉수대는 이길봉수대로 비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길봉수대, 아이봉수대, 나사봉수대의 상호 관계를 비교 검토하여, 각 봉수대의 정확한 위치와 명칭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