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1592년 평안도 정주에서 류성룡이 임진왜란 관련 시무에 관하여 올린 문서이다. 9장의 한지를 가로로 이은 두루마리 형태에 세로로 116줄의 초서(반초서)로 쓰여 있다. 1633년(인조 11)에 간행된 『서애집(西厓集)』의 「권5, 차(箚)」에 「진시무차 임진 십일월 재정주(陳時務箚 壬辰十一月 在定州)」라는 차자(箚子)가 실려 있다. 이 차자의 초고에 해당하는 고문서다. 임진왜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애집』에 최종 수록된 「진시무차」와는 상당 부분 동일하지만, 내용상에서 서로 첨삭된 부분이 있어 차이를 보인다.
정의
1592년 평안도 정주에서 류성룡이 임진왜란 관련 시무에 관하여 올린 문서. 상소문.
발간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둘째, 국가의 위기를 구하는 희망은 인심(人心)이므로, 군공 · 작상(爵賞) · 면천(免賤) · 면역 등 규정을 만들고, 군대와 민간인이 왜적을 잡아 얻은 것은 당사자에게 지급하는 등 방안을 마련하여 민심을 수습하면 적의 형세는 약해질 것이다.
셋째, 강원도에서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산척(山尺)을 상 지급 등 방법으로 모아 복병(伏兵)으로 활용하여 왜병을 토벌하게 하면 북로(北路)로 왕래하는 왜적은 허리 부분이 끊어져서 동남의 형세가 통할 수 있다.
넷째, 서울을 수복하는 방법은 3개의 진로로 나누어서 동쪽, 서쪽, 남쪽을 차단한 후, 적이 적으면 군대를 나눠 복병을 설치하고, 적이 많으면 합하여 공격 토벌하며, 의병과 관군이 합력해야 한다. 강원도 군대는 동쪽, 강화의 의병은 서쪽, 충청 · 전라도 군대는 남쪽 군대와 합세하도록 한다.
다섯째, 경상도는 적병의 집결 지역이므로, 경상도 인심을 결집시켜 적을 토벌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경상도가 흉년이 들어 민심이 불안하므로, 풍년이 든 전라도 곡식을 운반하여 경상도를 구제해야 한다.
여섯째, 정예 군사를 뽑아 왜병으로 가장하게 하고 우리 편은 서로 알 수 있게 한 후, 각 지역에 흩어져 유격전을 펼치는 것이 왜적을 물리치는 최상의 계책이다.
일곱째, 고언백(高彦伯)은 국가를 위하는 마음이 있고 계획도 있으나 직책이 낮아서 양주 한 고을 군대만 관장할 뿐이니, 평시 규정에 구애받지 말고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부산의 문화재』(부산광역시 문화예술과, 부산광역시, 2013)
- 『국역 진사록』(류성룡·이재호 번역, 서애선생기념사업회, 2001)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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