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향교
나아가다 [진] 억제하다 [진] 물 이름 [전]
부수 日 총획 10
나라 이름 [주] 섬 [주]
부수 巛 총획 6
향하다 [향] 마을 [향]
부수 邑 총획 13
학교 [교] 본받다 [교]
부수 木 총획 10
- 교육
- 유적
- 조선 전기
- 시도문화유산
- 명칭 진주향교 (晋州鄕校)
- 분류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 소재지 경남 진주시 향교로 99-3 (옥봉동)
- 웹페이지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0500000
- 위도35.1976192416892
- 종목 시도유형문화유산(1972년 02월 12일 지정)
- 지정기관경상남도
- 집필 1995년
- 김호일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3일
진주향교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조선전기 에 중건된 향교. 교육시설.
내용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병사(兵使) 이수일(李守一)이 대성전을 중건하였고, 1644년(인조 22) 병사 김태허(金太虛)가 명륜당, 동 · 서재를 중건하였다. 1811년(순조 11)과 1907년에 중수하였고 1979년 동 · 서재를 중건하였으며, 1984년에 명륜당과 1985년에 풍화루를 각각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각 5칸의 동무와 서무, 내삼문(內三門), 7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재와 서재, 풍화루, 그 밖에 부속건물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서원은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소장 전적은 대부분 산실되었고 《진주향교유계안 晉州鄕校儒稧案》 등 몇 권의 책만이 남아 있다. 하계방학 때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 『태학지』
-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 『경상남도지』(경상남도, 197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