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 ()

현대사
작품
2011년 12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000회를 맞은 수요시위를 기념하여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건립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이칭
약칭
소녀상
이칭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작품/조각·공예
발표 연도
2011년 12월 14일
작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김운성|김서경
소장처
주한일본대사관 앞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000회를 맞은 수요시위를 기념하여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건립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이다. 이후 건립된 ‘위안부' 기림비를 통칭하여 ‘소녀상’으로 부른다. 일본 정부의 소녀상 건립 반대 및 철거 주장에 대응하여 국내외에 소녀상 건립이 확산되고 있다.

정의
2011년 12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000회를 맞은 수요시위를 기념하여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건립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제작 배경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 추모비 설립, 미래 세대에 대한 역사 교육 등을 요구하며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 정오에 서울의 종로에 있는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개최하였다.

2011년 12월 14일 수요시위 제1,000회를 맞아 수요시위 장소를 '평화로'라고 부르고 이곳에 ‘평화비’를 건립하기로 하였다. 2011년 봄부터 ‘평화비’ 건립을 위한 모금과 제작 활동이 본격화되었으며, 정대협과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약 9개월간 제작에 관하여 논의하였다.

내용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는 일본인 피해자 시로타 스즈코〔城田すず子〕의 바람으로, 1986년에 일본 지바현 가니타여성마을에 설립된 ‘아아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의 비이다. 2008년 9월에는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섬에 2개의 기림비 ‘아리랑비’와 ‘여성들에게’를 설립하였다. 전쟁 시기 ‘위안부’ 피해자와 일상을 함께 하였던 미야코섬 주민들과 한국 및 일본의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건립하였다. 2010년 10월에는 미국 뉴저지 펠러세이즈 파크 타운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웠다.

2011년 12월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 뒤로 기림비는 대체로 ‘소녀상’으로 통칭되었다. ‘평화의 소녀상’을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건립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종로 구청에서 건립 허가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비판과 건립 반대 요구가 점점 거세졌다. 이에 대응하여 한국 사회의 건립 지지 목소리도 높아가는 가운데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소녀상’ 철거를 요청하였으며, 미국 등지에 건립되는 ‘소녀상’을 반대하기 위해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였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 장관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발표에서는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여 한국 정부가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시민 사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 안팎에서 ‘소녀상’ 건립 운동이 일어났으며, 2021년 11월을 기준하여 120개가 넘는 ‘소녀상’이 설치되었다.

형태 및 특징

작가에 따르면 ‘평화의 소녀상’ 형상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는 시기의 피해자 모습을 본뜬 것이다. 두 주먹을 쥐고 주한 일본 대사관을 응시하는 것은 평화에 대한 다짐의 표현이다. 단발머리 소녀 형상은 발꿈치를 살짝 든 맨발 상태로 작은 의자에 앉아 있다. 바닥에는 할머니 모습의 그림자가 있다. 소녀의 어깨 위에 앉은 새는 과거와 현재의 피해자들과 저승과 이승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소녀상’ 옆에 놓인 빈 의자는 피해자의 자리이자 피해자와 함께하는 시민의 자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의의 및 평가

‘평화의 소녀상’은 기림비 건립을 통해 ‘위안부’의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이라는 ‘위안부’ 문제 해결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기획되었다. 더불어 '위안부’ 가해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 피해를 직시하게 하여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이끌어 내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소녀상’이 반일의 상징이며 일본 공관의 안녕과 위엄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똑같은 형상의 소녀상 설치가 전형적인 전시 성폭력 피해자상에 호소하여 ‘위안부’ 피해에 얽힌 중층적인 의미들을 거세해 버린다는 일부 시민 사회의 비판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소녀상’을 공격하는 일본 정부와 역사 부정 세력에 맞서 ‘소녀상' 건립으로 대응함으로써 ‘위안부’ 피해의 기억을 지켜나가려는 움직임 또한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서경, 김운성, 『빈 의자에 새긴 약속-평화의 소녀상 작가노트』(도서출판 말, 2016)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년사 편찬위원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년사』(한울아카데미, 2014)

인터넷주소

KBS데이터저널리즘팀 제작, 전국 소녀상 지도 (https://www.google.com/maps/d/viewer?hl=ko&gl=kr&ll=35.66047206983127%2C127.36113959402664&z=6&mid=122RlnG-tiYuoyRfPzx8gZxhwQ6c, 2021.11.20.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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