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의 공개 증언을 시작으로 피해자들의 신고전화가 이어지고, ‘위안부’ 문제를 입증할 자료들도 발굴되고 있었으나 일본정부는 책임 회피와 은폐의 망언을 계속하였다. 이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으로 지칭)는 1991년 12월 11일에 정기적 시위를 진행할 것을 결의하였다.
수요시위가 처음 시작된 날은 1992년 1월 8일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둔 시기였다. 첫 시위는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정기 시위로 발전하였다. 처음 수요시위의 구호는 아래의 1~6항까지이다. 7항 책임자 처벌은 국제법적인 논의 과정에서 추가되었다. 시기에 따라 그 표현이 약간씩 변하였지만, 큰 틀은 변함이 없다. 첫 시위 당시의 요구 사항은 아래와 같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여성들을 군위안부로서 강제연행한 사실을 인정하라
그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라
만행의 전모를 스스로 밝혀라
희생자를 위해 추모비를 세워라
생존자와 유족들에게 배상하라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역사교육을 통해 이 사실을 가르쳐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광복절이나 특별한 기념일에는 각국에서 동시적으로 시위를 진행하여 국제적인 연대집회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 왔다. 수요시위는 공휴일인 날과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지진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시위를 쉰 것을 빼고는 계속되어오고 있다. 1000차(2011년 12월 14일) 시위를 지나 2017년 6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어 지구상에 가장 긴 시위가 되었다.
수요시위는 정대협의 주관하에 유관단체와 여성단체, 사회단체, 평화단체, 종교계, 학생 등이 주최자가 되었다. 참여자는 국내의 각계각층만이 아니라 아시아연대회의나 한국에서 열린 여성 및 평화운동 인권관련 국제대회 참가자들 그리고 일본의 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자들과 평화 활동가 등 외국인들의 참여도 많았다.
2011년에는 1000차 수요시위를 기념하여 ‘평화의 소녀상’이 주한 일본대사관의 도로 건너편에 합법적으로 설치되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정부합의’ 이후에는 한일 정부의 합의 내용에 평화의 소녀상 철거도 들어있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과 관련하여 더욱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 모아 수요일만이 아니라 평일에도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활동을 해 왔다.
수요집회의 장은 단순한 시위만이 아니라 국내외적인 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보고의 장, 다짐의 장이었으며, 피해자를 위로하는 장, 영결식장이 되기도 하였다. 또 8·15나 1000차 수요시위 등 기념일에는 국내외 각지에서 수요시위에 맞추어 군‘위안부’ 문제 해결 및 평화와 인권 관련 내용으로 공동 연대 시위도 하였다. 수요시위는 운동으로, 또 교육의 장으로서 국내외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