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역사관(The Museum of Sexual Slavery by Japanese Military)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의 부설시설로 1998년 8월 14일 개관하였다.
1988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여성단체들이 사회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1991년 김학순을 비롯해 피해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시급하게 논의된 것이 생활이 어려운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문제였다.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함께 활동하던 불교인권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1992년 10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나눔의 집을 열어 피해자들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다. 이후 나눔의 집은 혜화동 등을 거쳐 한 기부자의 도움으로 현 경기도 광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정대협 등 관련 단체와 ‘위안부’ 피해자들은 수년에 걸쳐 피해 사실의 증언과 일본 정부의 사과 요구 등 열성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이에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사후에 위안부 문제가 잊힐까 염려하였다. 나눔의 집 관련자들도 나눔의 집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필요성을 느껴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추진하였다. 즉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일본의 전쟁범죄 행위를 고발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그리고 후손들에게 산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설립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한국과 일본 등지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이루어졌다. 건립과정에 수도권 상수원 보호와 농지법 등의 걸림돌이 있었으나 1998년 8월 14일에 개관하게 되었다. 건물은 2층 구조로 300평의 대지에 총 100평 규모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 동이 지하 통로로 연결되고, 두 전시동 사이에는 계단식 야외 소극장이 있어 각종 공연이나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내부는 역사교육 공간으로서 군'위안부' 문제의 과거와 현재를 보는 전시 공간, 피해자 추모의 공간, 피해자들이 남긴 그림이나 유물 전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와 외부의 연결공간에는 관람객의 참여가 가능한 공간도 설정되어 있다. 처음 개관 이후 전시 내용은 다소간의 변화를 주어왔다. 외부에는 역사관과 나눔의 집 사이에 세워진 작은 동상이 있다.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못다핀 꽃>을 바탕으로 윤영석이 형상화 한 것이며, 역사관 건물 옆으로는 임옥상의 <대지의 여인>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강덕경·김순덕 등 피해자 자신들이 그린 사진이나 유물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할머니들의 생활공동체에 인접해 있는 점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이점이자 난점이기도 하다. 현재 나눔의 집은 역사관 관람객과 피해자 생활공간을 분리 운영하여 피해자의 공간을 보호하고 특별한 시기에만 개방하고 있다. 또한 역사관 및 주변 시설을 활용하여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몸으로 느끼는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나눔의 집 역사관은 피해자의 삶의 현장이면서 국내외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중요한 장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