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는 경상남도 중남부에 위치한 시이다. 2010년에 경상남도 창원시와 마산시, 진해시가 통합하여 만들어졌다. 통합 전 마산시는 마산만 서쪽에, 창원시는 마산만 동쪽이자 진해만 북서쪽에, 진해시는 진해만 북쪽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마산자유무역지역과 창원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기계, 전기·전자, 자동차 등 제조업이 발달하였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49.24㎢, 인구는 99만 9858명이다. 2024년 하반기까지 비수도권 지역에서 유일하게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였다. 창원시청은 성산구 용호동에 있다.
창원시는 경상남도의 중남부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은 경상남도 김해시, 남쪽은 마산만과 진해만, 서쪽은 경상남도 고성군 · 진주시 · 함안군, 북쪽은 경상남도 창녕군 · 밀양시과 접한다. 2010년 기존 창원시와 마산시, 진해시가 통합해 현재의 통합 창원시가 만들어졌다. 통합 전 마산시는 마산만 서쪽에, 창원시는 마산만 동쪽이자 진해만 북서쪽에, 진해시는 진해만 북쪽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마산자유무역지역과 창원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기계, 전기 · 전자, 자동차 등 제조업이 발달하였다.
행정구역은 5개 일반 행정구[의창구 · 성산구 · 마산회원구 · 마산합포구 · 진해구]에 2개 읍[동읍 · 내서읍], 6개 면[북면 · 대산면 · 구산면 · 진동면 · 진북면 · 진전면], 47개 행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49.24㎢이며, 인구는 99만 9858명이다. 경상남도청은 의창구 사림동에 있으며, 창원시청은 성산구 용호동에 있다. 시의 상징물로 시화(市花)는 벚꽃, 시목(市木)은 소나무, 시조(市鳥)는 괭이갈매기이다.
창원시는 중앙부의 남해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만입한 진해만과, 진해만에서 다시 육지 쪽으로 들어온 마산만을 품고 있다. 통합 이전 마산시의 시가지는 마산만 서쪽에, 창원시는 마산만 동쪽이자 진해만 북서쪽에, 진해시는 진해만 북쪽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경상남도 사천시에서부터 고성군을 거쳐 해안 산맥이 계속 이어지면서 500~600m 내외의 산지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며 동쪽으로 연결되어 김해시와의 경계를 형성한다. 시의 최고봉은 동쪽에서 김해시와 경계를 이루는 불모산(佛母山: 801m)으로, 북서쪽으로 대암산(大岩山: 676m), 정병산(精兵山: 567m), 구룡산(九龍山: 432m), 천주산(天柱山: 639m), 무학산(舞鶴山: 761m) 등이 이어지며 시가지와 외곽 지역, 그리고 경상남도 함안군 · 고성군과의 경계를 형성한다.
주요 시가지는 주변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지역과 해안가의 좁고 긴 형태의 구릉지 및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진해만 북쪽에 자리한 장복산(長福山: 584m)이 기존 창원시와 진해시의 시가지를 가로막고 있어, 2000년대 들어 양 지역 간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안민터널과 석동터널 등을 건설하였다.
지질은 대부분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층인 경상누층군에 해당하며, 산지부의 암층은 불국사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하천으로 북쪽 경계를 따라 낙동강의 본류가 흐르며 경상남도 창녕군 · 밀양시와의 경계를 형성하고, 주변으로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시역 내부에는 큰 하천이 발달해 있지 않으며, 주변 산지에서 발원해 마산만과 진해만으로 흘러들어 가는 회원천, 양덕천, 창원천, 내동천, 남천, 여좌천 등의 하천이 있다.
창원시는 남해안의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한 지역으로, 전체 해안선 길이는 약 324㎞이며, 도서는 총 41개로 이 중 유인도는 5개, 무인도는 36개이다. 진해만과 마산만은 수심이 깊을 뿐 아니라 동쪽과 서쪽에서 가덕도와 거제도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여 항만이 발달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장점을 활용해 진해는 일제강점기에 군항으로 개발되었으며, 마산항은 1899년(광무 3) 개항한 이래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하여 컨테이너 부두와 자동차 전용 부두 등을 갖춘 국제 무역항이 되었다. 1997년부터 조성되고 있는 부산신항 역시 항만시설의 상당 부분이 창원시 관내에 입지하고 있다.
기후는 남해안에서 나타나는 온난 습윤한 난대성 기후를 띤다. 19912020년까지 평년값 기준 연평균기온은 14.8℃로 온화한 편이며, 여름철[68월] 평균기온은 24.5℃, 겨울철[12~2월] 평균기온은 4.0℃이다. 연강수량은 1,534.1㎜로 다우 지역에 속한다.
창원시 일대는 전체적으로 삼국시대에 남해안 지역 소국들의 연맹체인 포상팔국(浦上八國) 중 골포국(骨浦國)에 속하였고, 이후 탁순국(卓淳國)을 거쳐 신라에 흡수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에 구(舊) 창원시 지역은 굴자군(屈自郡)으로, 마산 지역은 골포현(骨浦縣)으로 불리다가 757년(경덕왕 16)에 각각 의안군(義安郡)과 합포현(合浦懸)으로 개칭되었다. 이때 의안군이 합포현과 함께 진해 지역에 해당하는 웅신현(熊神懸)과 현재의 함안군 칠원읍에 해당하는 칠제현을 함께 관할하게 되었다.
고려 전기인 1018년(현종 9)에 의안군과 합포현, 웅신현은 지금의 김해시 지역에 해당하는 김주(金州)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 후기인 1274년(원종 12)과 1281년(충렬왕 7)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고려와 몽고 연합군의 일본 원정 기간에 합포현에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이 설치되는 등 이 지역은 일종의 병참기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공적으로 1282년에 합포현을 의안군에서 분리해 회원현(會原縣)으로 개칭하고 의안군 역시 의창현(義昌縣)으로 개칭하면서 두 지역에 각각 별도의 현령을 두게 되었다.
조선 전기인 1408년(태종 8)에 의창현과 회원현을 병합하여 창원부(昌原府)로 승격하였으며, 이후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로 다시 승격하였다. 현재까지 사용하는 창원이라는 지명은 이때 기존 의창현과 회원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웅신현은 계속 김해도호부에 속해 있다가, 1452년(문종 2) 완포현과 천읍부곡, 창원도호부의 세 마을을 병합해 웅천현으로 개편하면서 김해도호부에서 분리되었다.
창원도호부는 1601년(선조 34) 창원대도호부로 승격하였지만 1603년 이곳에 있던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진주로 옮겨 갔다. 1661년(현종 2) 문묘의 전패(殿牌)를 도둑맞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창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70년 대도호부로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 기존의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창원도호부와 웅천현은 각각 진주부 예하의 창원군과 웅천군이 되었다. 1906년(광무 10) 창원군은 김해군 대산면과 칠원군 구산면을 편입해 창원부로 개칭하였으며, 1908년(융희 2)에는 진해군과 웅천군도 편입한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창원군이 되었다.
1899년 마산포가 개항한 이후 성장을 거듭한 마산 지역은 1914년 창원부가 창원군으로 개칭할 때 마산부로 따로 분리되었다가 1949년 마산시로 승격하였다. 진해 지역은 1912년 일본 해군 진해방비대 설치를 시작으로 1916년 해군요항부(海軍要港府)가 개청하는 등 해군 시설의 입지에 따른 전략적 중요성에 힘입어 발전하게 되었다. 1931년 진해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가 1955년에 다시 진해시로 승격하였다.
1973년 창원공업기지 조성에 따라 창원군의 창원면 · 웅남면 · 상남면 일원과 내서면 · 구산면 일부가 창원군에서 마산시로 편입되었으며, 웅천면 전역은 진해시로 편입되었다. 1976년 공업단지가 조성된 창원면과 웅남면, 상남면 일원에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3년 경상남도청이 부산직할시에서 창원시로 이전하면서 행정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한편, 창원시로 승격되지 않은 나머지 창원군 지역은 의창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91년 다시 창원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에는 창원군의 북면 · 동면 · 대산면의 3개 면은 창원시와, 진동면 · 진북면 · 진전면 · 구산면 · 내서면의 5개 면은 마산시와 통합해 각각 도농 복합형 창원시와 마산시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2010년 창원시와 마산시, 진해시가 통합해 현재의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였으며, 2022년에는 「지방자치법」의 개정에 따라 비수도권 도시 중에서는 최초로 인구 100만 명 이상 도시에 부여되는 특례시 지위를 획득하였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창원시의 인구는 99만 9858명이다. 인구밀도는 1,334.5명/㎢으로, 경상남도 내 18개 시군 중 가장 많은 것은 물론,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 인구 1위에 해당한다. 2024년 11월 말까지는 비수도권 지역에서 유일하게 인구 100만 명을 넘는 도시였으나, 이후 소폭 감소하여 99만 9858명을 기록하였다. 성별로는 남성이 50만 6050명, 여성이 49만 3808명으로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에 비해 조금 많아 성비는 102.48이며, 외국인 주민은 1만 8121명으로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1.81%이다. 내국인 가구수는 45만 9474가구로 가구당 인구는 2.18명이다.
구별로는 성산구의 인구가 24만 4489명으로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 의창구 20만 9695명, 진해구 18만 8739명, 마산회원구 17만 8724명, 마산합포구 17만 8211명의 순이다. 읍면동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은 내서읍으로 5만 9388명이며, 다음으로 의창구 의창동 4만 8537명, 성산구 사파동 4만 4547명의 순이다.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은 마산회원구 봉암동으로 2,840명이며, 마산합포구 진북면과 진전면, 진해구 태백동, 마산합포구 구산면과 가포동의 인구 역시 각각 3,110명, 3,630명, 3,459명, 3,919명, 4,982명으로 5,000명에 미치지 못한다. 통합 이전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구 창원시 지역의 인구가 45만 4184명으로 가장 많으며, 구 마산시 지역은 35만 6935명, 구 진해시 지역은 18만 8739명이다.
창원시의 인구는 2010년 통합 이후 매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통합 직후인 2011년 인구는 외국인을 포함하여 110만 7341명이었으나 10여 년의 기간 동안 약 8만 명 이상이 감소하였으며, 내국인 인구만으로는 2024년 6월 30일 기준 100만 3731명으로 인구 100만 명을 상회하였으나 하반기에 100만 명 이하로 내려갔다. 이 때문에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에 부여되는 특례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창원시 차원에서 다양한 인구 정책을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인구 감소 추세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통합 이전 행정구역 기준 마산 지역의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마산시는 1979년까지도 경상남도 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로 1997년 광역시로 승격한 울산광역시보다 인구가 많았으며, 1989년에는 인구 50만 명을 넘어서면서 1990년 회원구와 합포구의 2개 일반구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산업구조 변화와 인접한 구 창원시로의 인구 유출 등으로 1989년 50만 5614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1993년에는 구 창원시에 인구 규모를 추월당하였다.
반면 기존 창원시는 1980년 시 승격 이후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여 1997년에는 인구 50만 명을 넘어섰으며, 울산광역시의 분리 이후부터 창원시 통합 이전까지 경상남도 내에서 인구 1위 도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진해 지역의 경우 1973년 인구 10만 명을 넘어선 이후 오랫동안 10만 명대 초반에서 소폭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2000년대 들어 부산신항의 개발과 경제자유구역 지정에 따라 대규모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2000년 13만 4549명[내국인 기준]에서 통합이 이루어진 2010년에는 17만 3911명으로, 그리고 2020년에는 19만 2755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2024년 12월 기준 창원시는 국가지정문화유산 37점과 시도지정문화유산 196점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유산을 유형별로 보면 보물이 8점, 사적 4점, 국가무형유산 1점, 천연기념물이 2점이다. 보물 8점 중 4점은 불교 유산으로 3점은 성주사(聖住寺)에서, 1점은 불곡사(佛谷寺)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 외 보물 3점은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의 유묵 중 일부인 안중근의사 유묵 - 청초당(安重根義士 遺墨 - 靑草塘), 안중근의사 유묵 - 임적선진위장의무(安重根義士 遺墨 - 臨敵先進爲將義務)와 조선시대 제작된 화기의 일종인 중완구(1986-2)(中碗口(1986-2))이다. 다른 보물인 유한지 예서 기원첩(兪漢芝 隷書 綺園帖)은 경남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다.
창원시에는 선사시대의 취락지임을 증명하는 패총[조개무덤, 조개무지], 고인돌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신석기시대의 패총인 진해 안골포 패총을 비롯하여 남산 패총, 소답동 패총, 내동 패총, 웅천 패총, 자은동 패총, 수도동 패총 등 다수의 패총과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창원 외동지석묘(昌原 外洞支石墓)[경상남도 기념물], 용잠리 지석묘군, 남산리 지석묘군 등의 지석묘가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성산구 외동의 창원 성산 패총(昌原 城山 貝塚)은 1973년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발굴된 유적이다. 이곳은 패총 아래의 야철지(野鐵址)와 삼한시대의 패총, 그리고 그 위에 축조된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반도 남부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마찬가지로 사적으로 지정된 창원 진동리 유적(昌原 鎭東里 遺蹟)은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기시대 집단 묘역으로, 약 500m에 걸쳐 대형 지석묘들이 연결되어 있다. 또한 41기의 돌널무덤이 발굴되어, 선사시대 장례문화와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아랫녘 수륙재(아랫녘 水陸齋)는 조선 전기부터 이어져 오는 불교 의례로 육지와 물에서 떠도는 모든 고혼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이다. 특히 경상남도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범패(梵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 음악과 의례 문화의 맥을 잇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창원시에는 2023년 3월 1일 기준 고등학교 48개, 중학교 66개, 초등학교 114개가 있다. 이 지역에서 근대 교육기관으로 가장 먼저 설립된 곳은 1899년 일본인이 설립한 마산포 일어학교(馬山浦 日語學校)이지만, 마산 주민들의 반대운동으로 학생이 줄면서 1906년 폐교하였다. 이후 1901년(광무 5) 지금의 성호초등학교 전신이 되는 공립마산소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06년 진해에 사립 개통학교[지금의 웅천초등학교]가, 1907년(융희 1)에는 창원에 창원공립보통학교 지금의 [창원초등학교]가 차례로 개교하였다.
중등학교로는 1909년 현재의 창신중학교 및 창신고등학교의 모태가 되는 창신학교가 처음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으며, 1912년에는 고등과를 병설하였다. 1913년에는 창신학교에서 분리해 여학생만을 위한 최초의 여학교로 의신여학교[지금의 의신중학교]가 건립되었다. 창원 지역의 근대 교육은 시가지가 먼저 형성된 마산 지역이 중심이었으며, 민족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사립학교들이 초기의 신교육을 주로 담당한 것이 특징이다.
4년제 대학은 국립인 국립창원대학교와 사립인 경남대학교, 창신대학교가 있고, 전문대학으로는 마산대학교, 창원문성대학교, 한국폴리텍Ⅶ대학이 있다. 1956년 해인대학이 진주시에서 마산합포구 완월동의 현재 부지로 이전해 오면서 최초의 지역 내 대학이 되었으며, 1971년 교명을 현재의 경남대학교로 변경하였다. 1969년에는 현재의 국립창원대학교 전신인 마산교육대학이 설립되었다가 1983년 창원으로 캠퍼스를 이전하면서 1985년 창원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진해에는 해군 및 해병대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4년제 특수대학인 해군사관학교가 1946년 해군병학교(海軍兵學校)로 개교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공공도서관 13개소가 운영 중이며, 보유 장서는 총 204만 권 정도이다. 박물관은 창원시립마산박물관, 창원시립진해박물관 등 8개소가 있으며, 미술관 5개소, 공연장 11개소가 운영 중이다. 의창구에는 2004년 개관한 경남도립미술관이 있으며,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은 창원 출신의 조각가인 문신(文信: 1923~1995)이 1994년 개관한 사립미술관으로, 작가 사후에 시에 기증되면서 2003년부터 시립으로 운영 중이다. 창원시에서는 이와 연계해 2012년부터 격년으로 창원조각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창원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성산구의 성산아트홀과 마산회원구의 3·15아트센터는 각각 2000년과 2008년에 개관한 곳으로, 창원 지역의 대표적인 공공 공연장 및 전시 시설로 대극장, 소극장, 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 행사로는 마산문화원이 매년 9월에 주관하는 향토 축제인 ‘마산 만날제’와 마산포에서 음력 4월에 풍요와 안전 항해를 기원하면서 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산성신대제(馬山星神大祭)’ 등이 있다. 진해에서는 1952년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 동상 제막을 계기로 추모제를 개최하다가 1963년부터 매년 종합 문화 행사이자 벚꽃 축제로 ‘ 진해군항제(鎭海軍港祭)’를 열고 있다.
창원시에 전해 오는 대표적인 설화 중 하나는 「만날고개 이야기」이다. 만날고개는 마산합포구 월영동과 내서읍 감천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설화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고려 후기 마산포에는 이씨 집안의 세 남매가 홀어머니를 모시며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가세는 더욱 기울었고, 결국 맏딸은 고개 너머 감천골에 사는 윤진사의 외아들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땅 일부를 받는 조건이긴 했지만, 남편은 반신불수에 벙어리였고, 시부모의 학대 또한 심해 시집살이는 고달프기만 했다. 시부모의 반대로 친정에 발길조차 할 수 없던 그녀는, 결혼한 지 3년이 지나서야 남편의 배려로 몰래 친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친정집은 이미 가세가 회복되어 있었고, 이에 맏딸은 시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단호한 호령에 마지못해 고개를 넘어 돌아왔는데, 그곳에는 자신을 기다리던 남편이 있었는데, 남편은 자신의 열등감을 이기지 못하고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죽어 가고 있었다. 이후 스무 살에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된 맏딸은 홀로 시집살이를 이어 갔다.
그러던 어느 해 음력 8월, 친정 소식을 엿들을 수 있을까 하여 만날고개에 올랐다가, 같은 심정으로 고개를 찾은 친정어머니와 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만날고개에서는 오랜만에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나는 풍습이 생겨났고, 이 설화를 바탕으로 오늘날 마산 지역에서는 ‘만날제’라는 이름의 지역 축제가 매년 9월에 열리고 있다.
또한 현재 유원지로 이용되고 있는 마산 앞바다의 돝섬과 관련한 설화도 전해진다.
‘돝섬’이라는 이름은 섬의 모양이 돼지가 누워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돼지의 옛말인 ‘돝’에서 유래한 것이다. 설화에 따르면, 가락국 임금의 총비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왕은 상금을 내걸고 그녀를 찾게 했고, 이때 한 어부가 포상팔국 중 하나인 골포(骨浦)에서 그녀를 보았다고 전했다. 임금이 신하를 보내 궁으로 돌아오기를 권했지만, 총비는 이를 거부한 채 군사를 피해 황금빛 돼지로 변했다가 다시 한 줄기 빛이 되었고, 앞바다로 날아가서 지금의 돝섬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밤마다 돼지 우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신라시대 마산에 머물던 최치원(崔致遠, 857~?)이 섬을 향해 활을 쏘고 제사를 지낸 후에야 울음이 멎었다고 전한다.
한편, 창원시는 현재 제조업 중심의 공업도시로 발달하였으나, 과거에는 농업과 어업을 주요 생업으로 삼았던 지역이었다. 이로 인해 「모내기노래」, 「베틀노래」, 「노젓는 노래」, 「그물당기기 노래」와 같은 노동요도 일부 남아 전해지고 있으며, 그 형태와 특징은 경상남도의 다른 지역과 유사하다.
2021년 당해 연도 시장가격 기준으로 창원시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9조 2172억 원으로, 경상남도 전체의 34.7%를 차지하며 도내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하였다. 이는 2위인 김해시보다 20조 원 이상 많은 규모이다. 업종별 총부가가치액을 보면, 제조업이 전체의 42.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농림어업은 0.7%, 서비스업 및 기타 분야는 57.1%로 나타나, 창원시 산업구조의 제조업 중심성과 서비스업의 동반 비중을 보여 준다.
제조업의 발달로 농업 부문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2022년 기준 농가 수는 1만 3860가구, 농가 인구는 3만 1624명으로, 통합 당시인 2010년의 1만 997가구, 3만 611명에 비해 규모는 작아졌지만 생산량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전체 경지 면적은 109.18㎢이며, 이 가운데 논이 81.48㎢, 밭이 27.70㎢를 차지한다. 주요 작물은 쌀, 보리, 콩 등 곡류이며, 채소류와 과실류의 생산량도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단감은 동읍과 북면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되며, 2022년 기준 19.53㎢의 면적에서 3만 6130톤을 생산해 재배 면적과 생산량 모두 전국 1위를 기록하는 등 국내 대표적인 주산지로 꼽힌다.
어업 관련 시설로는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원전항과 광암항을 비롯하여 덕동항, 진동항, 옥계항, 수치항, 시락항 등 지방어항 5개를 보유하고 있다. 어가(漁家) 인구는 1,433가구, 3,246명, 연간 어획량은 47.199t 수준이며, 부근 수역의 잦은 적조현상과 오염 등으로 근해어업은 사양화되고 있다. 주요 어종은 멸치, 가자미, 대구, 고등어 등이며, 진동면의 미더덕은 수산물 분야 지리적 표시제 16호로 등록되어 있다.
제조업 부문에서는 전통적으로 공업이 발달한 도시로 명성을 가지고 있다. 창원시는 일제강점기에 좋은 기후와 수질을 이용한 주조와 양조업이 활발하였으며, 1967년 양덕동에 한일합섬 공장이 들어서면서 섬유공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후 1970년대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 창원기계공업단지 등이 차례로 건설되면서 창원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업도시로 부상하였다.
2022년 기준 종사자 10인 이상 사업체 수는 1,866개이며 종사자 수는 10만 6839명인데, 이 중 창원국가산업단지가 입지한 성산구의 사업체와 종사자 수가 856개, 7만 4023명으로 창원시 전체 제조업 사업체와 종사자의 45.9%, 69.3%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기타 기계 및 장비 제조업 분야로 487개 업체에 2만 3931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종사자 수 기준으로 전기 장비 제조업이 2만 35명,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이 1만 7285명으로 그다음을 차지한다.
마산자유무역지역은 외국인 투자 유치와 고용 창출을 위해 1970년 3월 전국에서 최초로 ‘마산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부터는 관련 법령의 개정에 따라 ‘마산자유무역지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4년에는 일반공업지역에서 국가산업단지로 전환되었으며, 주로 정밀기기, 전자 · 전기 분야가 발달해 있다. 전체 0.96㎢의 면적에 2022년 기준 126개 업체가 입주해 5,389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 중 외국인 투자 기업은 33개 업체로 전체 입주 기업의 절반을 차지한다.
1974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창원국가산업단지는 25.3㎢의 면적에 2,800여 개 기업, 12만 2000명의 종사자가 근무하고 있으며, 생산액 규모는 4조 1900억 원에 달한다. 생산액 기준으로 대표적인 업종은 기계 분야 1조 5261억 원, 전기 · 전자 분야 1조 275억 원, 운송장비 분야 9,177억 원, 철강 6,485억 원 등이다. 진해구 원포동 일대에 조성된 진해국가산업단지에는 1.6㎢ 면적에 케이조선[전 STX조선해양], 오리엔탈마린텍[전 오리엔탈정공] 등 조선업 관련 기업이 집적해 있다.
2022년 기준 창원시의 도로 총연장은 2,139㎞이며, 포장률은 84.4%이다. 기존 마산 지역은 자연 발생적으로 확장된 도시의 특징으로 인해 좁고 복잡한 가로망을 가지고 있지만, 창원 지역은 계획도시답게 주요 가로망이 반듯하게 펼쳐져 있으며, 특히 창원국가산업단지를 관통하는 창원대로는 13.8㎞의 노선이 직선으로 뻗어 있기도 하다.
반면 진해 지역은 군항 개설 과정에서 원도심 지역에 방사상의 도로망을 구축해 세 지역의 시내 가로망의 형태가 특징적으로 구분된다. 주요 간선도로로는 국도 2호선이 시역의 남쪽을 동서 방향으로 지나면서 내부에서는 진해와 마산을 연결하고 외부로는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진주시를 잇는다. 국도 14호선은 남북 방향으로 시내를 통과하면서 마산과 창원 지역을 연결하고 있으며, 국도 5호선은 남북 방향으로 시 외곽을 통과한다. 마산, 창원, 진해 지역은 통합 이전부터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해 왔지만, 마산만과 장복산, 팔룡산(八龍山: 327m) 등의 자연 지형으로 인해 상호 간의 연결성은 좋지 않았는데, 1999년 안민터널, 2008년 마창대교, 2018년 팔룡터널, 2024년 석동터널 등이 지속적으로 건설되면서 점차 개선되고 있다.
고속도로로는 남해고속도로가 북쪽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북창원나들목과 동창원나들목을 통해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한편, 2008년까지 남해고속도로 본선으로 이용되던 노선은 현재 ‘남해고속도로제1지선’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고속도로는 시역을 통과하며 서마산나들목과 동마산나들목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남해고속도로와 부산신항을 연결하는 ‘남해고속도로제3지선’도 시를 지나며, 진해나들목을 통해 진출입이 가능하다.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내서분기점은 남해고속도로제1지선과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분기하는 지점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는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경기도 양평군까지 이어진다.
철도는 경전선(慶全線)이 동서로 관통하고 있으며, 관내에서는 경전선의 지선인 진해선(鎭海線)이 창원역에서 진해의 통해역까지 21.2㎞ 길이로 부설되어 있다. 주요 정차역은 경전선의 창원중앙역, 마산역, 창원역으로 2010년 경전선의 복선전철화 이후 일반열차 이외에 고속열차의 정차역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2010년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였지만, 기존의 철도 역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초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는 가장 많은 고속철도 정차역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진해선은 2024년 기준 여객용 열차는 운행하지 않으며, 신창원역과 진해역을 중심으로 화물 및 군수 물품 수송 용도로만 이용하고 있다.
해운 여객은 한때 마산항여객터미널에서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거제시, 전라남도 여수시 등 남해안의 주요 도시는 물론, 일본 후쿠오카까지 여객선이 운항하였으나, 2007년 마산-거제 고현 간 여객선 운항이 중단되면서 현재 정규 여객선 노선은 운영되지 않는다. 진해 속천항에서도 거제를 오가는 카페리를 운항하였으나 거가대교 건설 이후 수요가 감소하여 운항을 중단하였으며, 현재는 마산항과 속천항에서 돝섬해상유원지와 관내의 도서 등을 연결하는 연안 여객선만 정기 · 부정기로 운항하고 있다.
마산은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항의해 시민들이 분연히 일어난 ‘3·15의거’의 발원지이며, 1979년 10월에는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지역으로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마산회원구에는 3·15의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고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2003년 국립3·15민주묘지가 조성되었다.
의창군 동읍의 주남저수지는 8.98㎢의 면적에 100여 종의 철새가 찾아드는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 중 한 곳이다. 재두루미, 저어새, 고니 등 천연기념물과 기후에너지환경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다양한 희귀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창원시는 주남저수지의 철새 도래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2008년 10월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이라는 주제로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를 개최하였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주남저수지 인근에 람사르문화관을 건설하여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진해는 군항 도시로, 방사형 가로망과 도시 미화를 위해 조성된 벚나무를 활용하여 매년 봄 ‘ 진해군항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 축제는 현재 창원시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하였다. 진해군항제는 벚꽃 축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와 함께, 해군 군악대 · 의장대 공연, 해군사관학교 및 해군진해기지사령부 시설 개방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조화를 이루며 전국 최고의 벚꽃 축제로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여좌천과 경화역 일대는 진해를 대표하는 벚꽃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창원시는 프로야구[NC 다이노스], 프로축구[경남 FC], 프로농구[LG 세이커스] 등 주요 프로스포츠 구단의 연고지이며, 성산구에 위치한 창원레포츠파크에서는 2000년부터 경륜 경주가 열리고 있다. 2009년에는 축구 전용 구장인 창원축구센터가, 2019년에는 기존 마산종합운동장 주경기장 부지에 창원NC파크[마산야구장]가 새로 건립되어 최신 경기장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우수한 스포츠 인프라 덕분에, 다른 지역에서도 스포츠 관람을 목적으로 한 관광객의 방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