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군읍지(熊川郡邑誌)』는 경상남도 웅천군(熊川郡)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에서 편찬하였다. 특정한 저자가 아닌 웅천군의 행정 관원이 제작하였다고 판단된다.
불분권 1책의 필사본이다. 붉은색 인찰공책지에 베껴 썼다. 표제와 권수제 모두 ‘경상남도웅천군읍지(慶尙南道熊川郡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1이다.
대한제국 출범 이후 지방행정 정보를 새롭게 확보하는 과정에서 추진된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에 따라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였다. 대한제국 내부는 13도 관찰부에 훈령을 내려 각 군의 읍지와 지도 2건씩을 한 달 안에 제출하게 하였다. 고종 대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에 대비하고,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 이후 지방행정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정부에서 계선이 그려진 인찰공책지를 일괄적으로 나누어 주어 작성하게 하였기 때문에 본 읍지는 다른 읍지와 구분된다. 또한 세부적인 제작 방침을 내렸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내용이 통일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본문에는 웅천군의 자연과 역사, 문화, 경제, 행정 등의 내용을 담았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읍명(邑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성지(城池), 임수(林藪), 관애(關阨), 진보(鎭堡), 봉수(烽燧), 학교, 단묘(壇廟), 능묘(陵墓), 불우(佛宇), 궁실(宮室), 누정(樓亭), 도로,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봉름(俸廩), 환적(宦蹟), 인물, 과거(科擧) 등으로 구성하였다.
산천 항목에는 웅산(熊山)과 최치원(崔致遠) 및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사적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특기할 사항은 관애 항목에 관할 석성(石城)의 규모와 삼포왜란(三浦倭亂)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