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검 ()

목차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후백제 견훤의 셋째 아들(삼국사기)인 왕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936년(신검 1)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무주도독(武州都督)
관련 사건
견훤 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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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후백제 견훤의 셋째 아들(삼국사기)인 왕자.
내용

견훤(甄萱)의 셋째 아들이다. 형제로 맏형 신검(神劍)과 둘째 형 양검(良劍)과 아우 금강(金剛)이 있었다. 견훤의 아들은 10여 명이나 되었다고 전한다.

견훤이 넷째 아들 금강을 편애하여 장차 왕위를 그에게 물려주려 하자 신검·양검·용검의 3형제는 불안을 느끼게 되었고, 이찬(伊粲) 능환(能奐)의 꾐에 의하여 형 양검과 함께 신검을 달래어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유폐시키고, 아우 금강을 죽인 뒤 신검이 왕위에 올랐다.

이 때 용검은 무주(武州 : 지금의 光州) 도독(都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듬해의 통일전쟁에서 후백제군은 고려군에게 패배하게 되었고, 용검은 신검·양검과 함께 고려진영에 항복하였다. 고려 태조에 의하여 양검과 더불어 진주(眞州)에 귀양갔다가 얼마 뒤에 모두 살해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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