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와룡산(臥龍山)에서 뻗어 내린 해발 310m의 끝 봉우리에 둘레 100m 정도의 석축을 두르고 그 내부에 화덕 시설을 한 것으로 추정되나, 그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봉수대 뒤편에는 당시 봉수군의 숙소로 추정되는 집터가 남아 있다. 안점산 봉수대는 남해안에 위치한 간봉(間烽)이며, 남으로 삼천포 각산(角山)봉수와 응답하고, 북으로는 망진산(望晉山)봉수에 상응하며, 삼천포진성(三天浦鎭城)과 관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수제도는 고려 의종 3년에 서북병마사 조진약(曺晉若)의 주청에 의하여 처음 시작되었고, 세종 원년(1419)에는 봉수령을 제정 군사제도로 정착되었다.
봉화방법은 밤에는 불로, 낮에는 연기로 하였으며, 신호체계는 아무일이 없을 때에는 1거(炬),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2거, 해안에 가까이 오면 3거, 우리 병선과 접전하면 4거, 육지에 상륙하면 5거로 하였다.
이러한 신호는 즉각 오장이 각 지방 수령에게 보고하였고, 서울에서는 병조에서 관장하여 승정원에 보고, 임금께 상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