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김교의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고경(高卿)이다. 판예빈시사 시로(時露)의 아들로 무과에 급제, 벼슬길에 오른 뒤 입사한 훈련원판관을 거쳐, 부호군이 되었다. 그 뒤 종성절제사, 길주목사, 충청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출정하여 적개 일등공신에 책봉되었다.
교서의 내용은 대체로 김교를 적개 1등공신에 책봉하는 이유와 아울러 그에게 내리는 포상의 내용, 그리고 1등 ·2등 ·3등으로 나눈 적개공신 45인의 명단 등을 소상히 묵서(墨書)하고 있다. 교서의 첫머리와 끝부분에는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안보(安寶)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 기록인 『세조실록』 13년 정해(丁亥) 9월 임신조(午條), 11월 갑자조(甲子條)와 잘 부합된다. 교서의 현존 상태는 부분적인 결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판독이 가능하며 날인된 「시명지보」도 그 형태가 잘 보전되고 있다. 교서의 크기는 가로 118㎝, 세로 29.3㎝이며, 바탕의 재료는 명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