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인홍의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덕원(德遠) · 호는 내암(來庵)이다. 임진왜란 때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으며 영남의병장의 호를 받았다. 1612년(광해군 4) 우의정이 되었고, 1618년에 좌의정에 올랐으며, 1623년 인조반정으로 참형되었다.
그에 관계된 고문서 및 서적은 임진왜란 직후부터 1619년(광해군 11)까지 27년동안 조정에서 받은 교지류 · 유지류 · 공신녹권 등 모두 92점이다. 그 주요문서 및 서적은 다음과 같다.
①교지류(敎旨類) 15점은 선조 및 광해군이 정인홍에게 벼슬을 제수한다는 내용이다.
②유지류(諭旨類) 59점은 광해군이 정인홍에게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 부임하도록 하였으나, 계속 사의하므로 하루빨리 부임하라는 독촉의 유지(諭旨)이다.
③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 1책과 ④ 『내암선생문집』 15권 7책 및 ⑤『등대초(登對草)』 1책이 있는데, ⑤는 정인홍이 두 차례 입경했을 때 광해군과 대좌하여 나눈 의견과 1차의 서연(書筵) 강의내용이 기록된 초록이다.
⑥ 『양류록(壤流錄)』 1책은 정인홍의 정치적 철학과 신념을 초고한 필사본이다.
⑦「십구공신회맹문(十九功臣會盟文)」, ⑧『사직봉사(辭職封事)』 1책이 있는데, ⑧은 그가 우의정으로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은 상소문이다. 그리고 ⑨「정인홍신원단자(鄭仁弘伸寃單子)」 1점, ⑩「정인홍선생단자(鄭仁弘先生單子)」 1점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일괄 도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